김아타, 베니스 비엔날레 초대받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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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워싱턴·뉴욕·도쿄·모스크바·프라하·베를린·파리·로마….

지난해 사진가 김아타(53·사진)씨는 이들 8개 도시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난해 3∼5월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친 뒤 이들 도시를 돌며 1만 컷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인달라(Indalla)’ 시리즈를 위해서다. 디지털카메라로 도시 곳곳의 사진을 1만3000컷쯤 찍은 뒤 이 중 1만 컷을 골라냈다. 그리고 이들을 전부 다 합쳐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었다. 결과는, 회색 화면이었다. 채집돼 합쳐진 이미지가 존재는 하되 보이지는 않는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김씨는 이 노작을 올 6∼11월 베니스 비엔날레 연계 특별전에서 선보인다.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니스 시내 팔라초 제노비오(Palazzo Zenobio)에서 여는 ‘아타김: 온 에어’전이다. 비엔날레 사무국을 거쳐 총감독인 다니엘 번바움의 승인을 얻은 공식 연계행사다. 김씨는 “한국 작가가 이 같은 형식의 특별전을 여는 것은 2007년 이우환 씨 이후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인달라’ 시리즈를 필두로, 각 도시에서 8시간 동안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두고 찍은 장노출 사진인 ‘온에어’ 시리즈와 ‘얼음의 독백’ 시리즈 세 섹션으로 나뉜다. 번화한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8시간 내내 찍으면 사람이나 자동차 등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정지된 형상만이 남는다. 이렇게 타임스스퀘어·유엔본부·비무장지대 등을 다룬 것이 ‘온에어’ 시리즈다.

‘얼음의 독백’은 마오쩌둥·석가모니, 파르테논 신전을 얼음 조각으로 만든 뒤 이들이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이들 사진을 걸어놓고 김씨는 질문을 던진다. 한때 서양사의 중심이던 로마와 아테네는 어디로 갔는가, 신중국인들의 사상을 지배했던 마오쩌둥은 어떻게 녹아 없어지는가.

이같은 화두를 던지는 그의 사진은 철학에 가깝다. 2006년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인전을 열 때 이곳 큐레이터인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사상을 새로운 이미지로 보여줬다”고 평했다. 싱가포르 아트페스티벌, 베를린 세계문화하우스 등의 국제그룹 전에도 참가했다. 그의 사진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아트컬렉션, 휴스턴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앞서 4월 중 독일 유명 출판사인 ‘하체칸츠’에서 그의 사진집 2종을 출간할 예정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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