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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주권반환에 딸려온 재산만 77조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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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홍콩에는'샤오푸젠(小福建.작은 푸젠)'이라는 지명이 있다.물론 홍콩정부에서 발행하는 지도에는 없는 이름이다.

홍콩섬 동부지역 베이자오(北角),영국식 이름으로는 노스 포인트(North Point)라 불리는 이 지역은 홍콩속에 숨어 있는'이방인들의 땅'이다.홍콩판'게토(ghetto)'인 셈이다.

이 지역이'작은 푸젠'으로 불리는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푸젠성 출신이기 때문.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할 때 가까운 혈족과 친지,나아가 동향인(同鄕人)끼리 철저하게 뭉쳐 사는 중국인 특유의 기질이 낳은 독특한 산물이다.

'작은 푸젠'은 과거'작은 상하이(上海)'였다.지난 49년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피해 홍콩으로 몰려들었던 상하이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하이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벌어 해외등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자 푸젠성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베이자오는 이제 홍콩에 새로 이주해 오는 푸젠성 사람들에겐 제2의 고향이다.아니 고향보다 더 나은'축복의 땅'이다.고향에서 맛볼 수 있는 구수한 인정은 인정대로 살아 있는데다 따뜻한 도움과 풍요한 물자가 있기 때문이다.

“푸젠성 사람이 찾아오면 이미 정착한 친지가 방찾기에서부터 직업구하기등 모든 것을 도와줍니다.친지가 없으면 아무나 그 일을 떠맡습니다.다 한 고향 사람들이니까요.” 푸젠중학교 쩡안치(曾安琪.50.여)교장의 설명이다.

베이자오에 있는 푸젠성동향회는 같은 고향 사람들이 한데 모여 향수를 달래는 사교장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고향을 그리는 이들이 한데 모여 고향 얘기로 꽃을 피우면서 향수를 달래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섬 서쪽끝에 위치한 시환(西環)은 대표적인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지역 출신 이민자들의 집단 거주지역.그러나 이곳 게토의 불문율은 독특하다.

“새로 이민와 정착한 사람에게 산터우 동향인들은 세번까지 도움을 줍니다.물론 재정적인 도움이지요.한번 지원해 실패했을 경우 다시 도와주고 두번째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세번째마저 실패했을 때는 도움을 주지도,바라지도 않는게 우리 마을의 불문율입니다.” 홍콩거주 11년째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산터우 출신 천구성(陳古生.52)의 설명이다.이는 고향사람끼리의 따뜻한 정도 중요하지만 모두 못살게 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중국인다운 현실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홍콩에는 이같은 연고지별 정착촌들이 또 있다.주룽(九龍)반도의 쭤둔(佐敦)지역과 선수이부 인근에는 하이난(海南)성 출신자들이 대거 몰려 산다.

'집안에서는 부모,집밖에서는 친구를 의지한다'는 중국속담이 있다.그만큼 연고를 중시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말이다.

게다가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간 홍콩이지만 중국인에게 이곳은 아직 낯선'이국의 땅'일 수밖에 없다.돈많고 유식한 홍콩인들이 이들 대륙인을 따뜻하게 맞아줄 가능성은 희박하다.피붙이.고향붙이들끼리 서로 살을 부비며 살아야 견딜 수 있는 냉혹한 곳이라는 얘기다.

이같은'게토'들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중국인들은 앞으로도 혈연과 지연이 부르는 응집력을 바탕으로 집단거주촌을 형성하며 홍콩의 지도를 새로 그려나갈 것이다. 홍콩=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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