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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슴 능력 없는 자, 정치하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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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06면

이희원씨의 『무감각은 범죄다-‘저항의 미학’으로서의 성 미학』(이루·2009)을 읽었다. 제목에 붙은 긴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 좀 화끈하고 재미있기를 기대하지만, 책 읽기는 쉽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본문 곳곳에 인용된 10여 편의 야한(?) 영화들이 가독성을 높이느라 분투했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가장 흥미진진한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크스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정일이 만난 작가-미학자 이희원

“저는 매일 화염병과 최루탄 가스가 얼룩진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21세기의 괴테’라는 브레히트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마르크스와 만났습니다. 이렇듯 예술의 위력을 통해 마르크스에 다가간 덕분에 소위 진보적 학자들마저 ‘죽은 개’ 취급하는 마르크스를 저는 지금도 여전히 내 삶 가까이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레히트로 석사 논문을 쓴 뒤 유물론 미학을 공부하고자 독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자본론』이후 최고의 책이라고까지 칭송된 페테르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감각은 범죄다』는 브레히트에서 시작된 저의 관심이 마르크스를 거쳐 바이스에 도달하기까지 잠재적으로 의식해 왔던 ‘저항의 미학’을 오르가슴이란 성 현상을 통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준비 체조 삼아 습득해야 할 개념이 ‘대상적 활동’이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 『경제학-철학 수고』에 처음 출현하는 이 용어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사유 체계 전체를 가능하게 하는 중추 개념이다. ‘대상적 활동’이란 인간이 자기 바깥의 대상(자연)에 자신의 욕구와 노동을 투여함으로써 비존재에 불과하던 대상을 존재하게 만들며(노동의 결과물), 비존재적 대상을 조작하는 창조적 활동을 통해 인간 역시 풍요롭게 된다는(역사 발전), 상호 교호성을 품은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통해 인간과 대상을 매개하는 노동의 창조적 역할을 설명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예술 활동 역시 ‘대상적 활동’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오감을 사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예술 작품을 통해 자신을 실현할 뿐 아니라 자신을 바꾼다.

워낙 바빴던 사람이라 마르크스는 ‘사랑론’을 미처 기술하지 못했지만, 아주 흥미롭게도 ‘대상적 활동’을 설명하는 가운데 “만일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대 자신을 동시에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사랑이요 하나의 불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란 구절을 써 두었다. 저자는 바로 이 대목을 잡아채 ‘대상적 활동으로서의 성행위’ 이론을 개진한다.

“노동과 예술과 성은 구조적 유사성이 있습니다. 소외된 노동을 예외로 하고, 또 문화 산업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노동과 예술은 똑같이 자신을 투여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 주는 흔적을 남깁니다. 문제는 성행위인데, 제가 보기엔 성행위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작품 활동입니다. 성행위는 행위의 결과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과 예술에 견주어 그 특질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성행위의 내적 동력 및 결과에 따르면 성행위 역시 노동이나 예술과 상동성을 갖습니다. 자신을 내던져 대상과 전면적 융합이나 소통을 이루는 것이 그렇고, 오르가슴 체험 끝에 내면의 감각적·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책은 프리섹스주의자를 위한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다. 일례로 지속성이야말로 대상적 성행위를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기 때문에 본서는 ‘잘 알고 오래도록 사귄 사람과의 섹스는 만족도가 낮다’는 일반적 편견과는 거리를 둔다. 그리고 성행위란 육체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차원을 던져 쾌락 이상의 것을 건져 내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지도 않은 채 재미만 보려는 원 나이트 스탠드(One Night Stand)를 ‘소외된 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도덕주의자를 편드는 것도 아니다. 자위행위를 비롯하여 강간, 동물을 성 만족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수간, 혹은 시체 간음 등에 대한 질타는 주로 도덕적 층위에서 논의된다. 하지만 본서는 그런 행위들이 대상적 활동에 필수적인 구체적 대상이 결여되었으며,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성적 소외 상태만 더욱 강화될 뿐이라고 말한다.

성행위에 열중한 두 사람이 애타게 찾는 지점은 오르가슴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자신의 경계를 허무는 ‘상호 던짐’의 행위 끝에, 상대방과의 완전한 합일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의식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의식을 지배한다. 이 순간의 체험이 귀중한 것은, 단지 성적 쾌감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인성 구조를 변화시키고 사회조차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것이 거기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오르가슴 능력이 좌절될 때 신경증적 울혈이 생긴다고 하는 데 그쳤지만, 빌헬름 라이히는 그 좌절을 인성 구조 전체와 사회 차원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저 또한 우리 사회의 경직되고 위선적이며 공격적인 모습은 ‘상대와 섞이고 싶은’ 진실된 욕구가 좌절된 데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오르가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억압적 권위에 대해 ‘체질적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게 되고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배자들은 이데올로기·문화·교양 같은 신비화 전략을 통해 피지배자들이 오르가슴으로부터 무감각해질 수 있는 구조적 장치들을 사회 도처에 설치합니다. 바이스가 제창한 ‘삶의 태도로서의 저항’에 암시받은 저의 자그마한 노력은 ‘풍부한 인간적 감각들이 완전히 펼쳐진 사회’라는 거대한 꿈을 향해 가는 걸음걸음입니다.”

내 신체는 저항의 거점이다. 자신의 감각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운동은 헛되다. 내가 동물이라는 것을 아직 자각하지 못한 이상주의는 실패한다. 궁극의 혁명은 자연적 본성을 억압하는 모든 문화와의 싸움이다. 강제적 금욕은 복수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 책은 말한다. 오르가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지 말라! 그 사람은 반드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정치를 하게 된다.


‘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소설가·희곡작가·책 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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