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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잔, 그저 평범하고 싶었을 뿐이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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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10면

연극 ‘억울한 여자’
2월 5일~3월 8일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
화·수·목요일 오후 8시, 금요일 3·8시,
토요일 4시·7시30분, 일요일 4시
문의 02-762-0010

그 여자는 그저 평범하고 싶었을 뿐이고,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솔직하게 얘기할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거북해한다. 비웃는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 사실 그녀는 조금 집착이 강하다. 남다른 모험심이 있다.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웃의 따돌림과 결혼 파경 사유가 될 정도는 아니다. 왜 사람들은 그녀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그녀는 억울하다.

연극 ‘억울한 여자’는 어느 주부의 이야기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며 그림책을 만드는 남자에게 세 번의 이혼 전력이 있는 여자가 시집온다. 남자도 어차피 이혼 전력이 있는 터. 예쁘고 착한 그녀와 잘 맺어졌다고 생각한 이웃들은 따뜻이 맞아 준다. 남자는 “요리사가 되려 해서 꽃과 벌레의 놀림을 받는 사자” 등 ‘이상한’ 내용의 그림책으로 의외의 인기를 얻고 있다. 여자는 이런 남자라면 ‘조금 별난’ 자신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열렬한 팬이 되고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녀가 수수께끼의 ‘떨 매미’를 찾아다니면서 남편과 이웃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한다. 비행접시나 설인처럼 그 지역 전설에 불과한 매미를 진지하게 찾으려 한다며 괴짜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실없는 수다로 시간을 보내고 불륜을 꿈꾸는 것으로 무료한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려 한다. 즉, 매미 탐사는 비정상이 되고 바람기는 정상이 된다. ‘억울한 여자’는 계속 묻는다. “나 이상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잘못된 게 있으면 말해 줘.”

하지만 남편과 이웃들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거짓말을 하며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피상적으로는 이해해 주는 척하며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냉담한 배려를 베푼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펑’ 터뜨린다. “널 이해할 수 없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이제 같이 못 살겠어!”

이 연극은 일본의 극작가 쓰시다 히데오의 2001년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 초연돼 단 열흘간의 공연으로 ‘한국 연극’의 ‘2008 베스트 7’에 선정되고 연출가 박혜선은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이지하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도 두루 찬사를 받았다.

차이를 배척하고 집단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의 습성, 일상의 평범함 속에 담긴 폭력성, 외로움과 소통 불가능성.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뽑아 낼 수 있는 주제고 이를 다루는 작품도 많다. 그러나 이 연극은 조용하면서도 절묘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미학을 보여 준다.

조금씩 어긋나는 대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무안함, ‘남다름’을 바라보며 출렁이는 눈빛의 교환, 커피를 다 마셨는데도 어색한 순간을 무마하기 위해 빈 잔을 입에 대고, 서로 번갈아 꾸벅 인사를 하고, 습관적으로 말을 반복하고, 의미 없는 감탄사를 뱉는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희극적이면서도 절박한 상황이 경쾌한 템포로 묘사된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 아무도 ‘평범’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여자는 또 한번, 다섯 번째인 결혼을 시도한다. 상황은 앞서와 비슷하지만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 그녀도 분명 무언가를 배웠다. 여전히 사랑받고 결혼하고 사회에 속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녀가 이번에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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