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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가 20년 만에 나타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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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최근 국내에서 20년 만에 빈대가 발견됐다고 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엄밀히 말하면 정확히 언제부터 빈대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 없다. 30년 전일 수도, 그 이전일 수도 있다. 아니면 토종 빈대는 아직도 그 세대를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데 관심권에서 멀어져 ‘사라진 종’으로 분류됐는지도 모른다.

해방 이전과 한국전쟁 때는 빈대가 곳곳에 바글바글했다. 이항일 전 연세대 의대 교수가 쓴 『의용곤충학』엔 “1970년대께 없어졌다고 믿어진다”고 기술돼 있다. 한때는 “연탄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스에 ‘질식돼’ 죽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주택 개량 등 주거 환경이 개선되고 위생 상태가 나아지면서 ‘은밀히 숨을 곳’이 없어져 종적을 감췄다는 설이 유력하다.

2007년 말 다세대 주택서 발견

이번에 발견된 빈대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국내산일까, 미국산일까. 명쾌한 답은 없다. 빈대를 ‘생포’하지 못해서다.

빈대를 처음 확인한 연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용태순 교수는 미국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는 이렇다.

2007년 12월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에 한 여성이 빈대 한 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미국 뉴저지에 오래 살다가 9개월 전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한 재미교포 여성 Q씨(30)였다. 그는 용하게도 책상 위에 기어 다니는 빈대를 잡아 왔다.
이미 눌려 죽은 상태였지만 외양이 크게 망가지진 않았다.

용 교수는 “Q씨의 집을 방문하면 빈대가 엄청 많아서 생포(산 채로 채집)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빈대가 번식력이 강한 데다 Q씨의 집에 이렇다 할 방역을 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했다. 당시가 ‘빈대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겨울이라는 점도 생포 가능성을 점치게 한 요인이다. 용 교수는 이듬해 1월까지 세 번이나 Q씨의 다세대 주택을 방문해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알 두 개와 빈대 두세 마리의 껍데기를 찾아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용 교수는 “옆방에 산 Q씨의 동료는 빈대에 100군데나 물린 자국이 있었고 가려워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며 “동료도 미국에서 살다가 온 여성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빈대가 있다는 사실을 안 뒤 모두 이사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동안 빈대가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용 교수는 “빈대는 6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버틸 만큼 생존력이 강하다. 옷·가방·컨테이너·이삿짐 등에 실려 얼마든지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빈대 잡다가 초가 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빈대는 숨는 데 귀재다.

미국은 요즘 ‘빈대 천국’

요즘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LA 등 대도시에선 빈대가 극성이다. 호텔에 투숙하거나 집을 구할 때 ‘빈대 없는 방’을 부탁할 정도다.

위생 관념이 크게 떨어지는 후진국에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빈대가 왜 미국에 둥지를 틀었는지 의문을 품을 만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다. 첫째, 제3세계 국가의 국민이 미국으로 여행·이민 오면서 빈대를 동반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빈대 잡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대해 내성(저항성)을 보이는 빈대가 출현, 가정에서 쉽게 박멸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선 50년대 DDT(유기염소계 농약)를 사용하면서 빈대가 거의 사라졌다. 그 후 DDT가 잔류성·독성으로 인해 사용 금지되면서 저독성인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모기향 성분)를 널리 써왔다. 이 살충제가 오·남용되면서 내성이 생긴 빈대가 나타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용 교수는 “미국 일반 가정에선 살충제 사용을 극히 꺼린다”며 “살충제 남용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와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공동연구팀은 미국의 가정에서 채집한 일부 빈대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대해 저항성을 갖도록 돌연변이됐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안용준 교수는 “빈대는 물론 바퀴벌레·머릿니·벼룩 등 해충이 녹다운(knock-down) 저항성 인자를 갖고 있으면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살포해도 이들을 죽이지 못한다”며 “국내에 서식하는 해충이 녹다운 저항성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 없다”고 말했다.

물리면 가렵지만 질병 전염 없어

모두가 피를 빠는 흡혈 해충이다. 내성이 생긴 돌연변이를 제외하면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뿌리면 대부분 죽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분류학상으론 머릿니와 몸니만이 같은 종류고 나머지는 다른 해충이다.

이 중 빈대는 영문명이 ‘bed bug(침대벌레)’다. 침대 생활을 주로 하는 나라에 많다. 물리면 가려워 괴롭지만 특별한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게 특징이다. 주로 밤에 사람의 피를 빤(암수 모두 가능) 뒤엔 몸에 남아 있지 않고 은신처로 숨어든다. ‘빈대 붙는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은 몸에 달라붙어 기생하지 않는다. 외형은 바퀴벌레처럼 납작하며 갈색에 길이는 7∼8㎜가량이다.

벼룩(flea)은 ‘점프왕’이다. 사람벼룩과 쥐벼룩·고양이벼룩·개벼룩 등이 있다. 이 중 사람벼룩이 중세에 흑사병(페스트)을 일으킨 놈이다. 국내에는 페스트 환자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사람벼룩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몸니·머릿니 등 이(lice)는 발진티푸스 등 리케차(미생물 그룹의 하나)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해충이다. 최근에 몸니를 봤다고 보고한 학자는 없다. 그러나 노숙자가 늘어나면서 다시 출현 가능한 해충으로 본다. 몸니와 유사한 종인 머릿니는 최근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2007∼2008년 겨울 국내 어린이 100명 중 4명이 머릿니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강남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머릿니의 감염률이 20% 이상이었다. 머릿니는 감염자에게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가렵다고 긁으면 피부가 상해 세균·곰팡이 감염이 2차로 동반될 수 있다.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이승환 교수는 “머릿니는 도시형 질병에 속한다”며 “자녀의 위생 상태를 잘 관리하기 힘든 맞벌이 부부 가정에 흔하다”고 조언했다. 스스로 머리를 감을 수 없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주된 머릿니 감염 대상이라는 것이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저독성 머릿니 약을 구입해 머리를 감기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감염된 어린이가 입은 옷은 끓는 물에 세탁하고 베개와 이불은 햇볕에 말릴 것”을 당부했다.

또 머릿니 약(린덴·크로타미톤 등)은 이만 죽이지 알(서캐)은 죽이지 못하므로 완벽하게 없애려면 손이나 참빗으로 죽은 이와 알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어린이가 치료를 시작한 뒤엔 증상이 없더라도 온 가족이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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