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접대비>4. 끝. 인터뷰 - 권태준 감사원 부정방지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업 접대비 실태조사를 지휘한 권태준(權泰埈)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은 11일“거의 모든 기업이 접대비를 기업경영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길 만큼 접대비리의 뿌리가 깊은데 놀랐다”고 말했다.

權위원장은“이같은 부패관행을 척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대가성 없는 떡값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고 법적.제도적 근절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감사원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나.“지난해 10월초부터 지난 4월말까지 7개월간 조사했다.21개 기업의 사장과 경리담당자,세무서.구청.경찰서등 관공서 공무원,접객업소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처음엔 면접을 기피했다.그러나 대책마련을 위한 단순한 실태파악이란 점을 설득,진솔한 진술을 확보했다.감사원은 이번 자료를 감사나 수사로 연결시켜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실태파악후 느낀 점은.“한심스럽고 안타까웠다.병이 이렇게 깊은줄 몰랐다.사업을 하려면 으레 관계 공무원과 원청업체에 접대하고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경험으로 믿을 정도였다.” -기업의 접대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 않나.“물론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과 같은 긍정적 역할도 있다.문제는 접대문화가 정상적 경제와 사회규범을 해치는 사회해악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접대비는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원리에 위배된다.가장 경쟁력있는 상품이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고,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 뒷거래로 부적절한 제품이 시장을 주도해 결국 국가경제 전체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비효율.낭비로 이어진다.접대에 들어간 비용은 판매가격으로 전가돼 소비자가 그 부담을 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그렇다.기업에서 정치인에게 건넨 접대비는 떡값이 되고 공무원에게 찔러준 뒷돈은 촌지로 교육계에 나간다.과도한 접대문화는 과소비와 향락산업의 번창을 야기해 성실한 근로의욕을 반감시킨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조성된 돈은 다시 비정상적 방향으로 사용돼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접대문화가 만연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해방 이후 수십년간 관(官)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기업과 개인의 성패가 권력과의 밀착이나 파워엘리트와의 인간관계에 의해 결정돼 왔기 때문이다.이 영향은 국민 일상생활에까지 만연돼 일선 파출소나 동사무소의 담뱃값으로부터 한보사태에서 드러난 고위공무원의 떡값 수수에 이르기까지 접대관행이 일반화됐다.” -문민정부 초기 사정(司正)때 왜 이 부분을 뿌리뽑지 못했나.“부정부패 추방에는 실패했지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개혁의지는 높이 사야한다.그러나 실패원인을 가신(家臣)이나 자녀의 잘못으로만 볼 수는 없다.사회의 아래부터 위까지 퍼져있는 불공정한 관행을 단기간에 척결하는 것은 지난한 과제였다.결과적으로 개혁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패관행에 굴복한 것이다.” -해결책은 마련됐나.“궁극적으로 합리적인 사고와 문화가 정착돼야하며 그에 앞서 제도와 법의 개혁이 필요하다.경제분야에서는 우선 접대비.기밀비를 인정해주고 있는 법인세법의 손비인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1백원을 들여 2백원의 효과를 본다면 이를 마다할 기업인이 어디 있겠나.모두 공정한 규칙으로 경쟁하도록 해야한다.동시에 정치인.공무원들의 떡값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직자윤리법을 개정,선진 외국처럼 금품수수나 향응을 엄격하게 제한.처벌해야 한다.'대가성없는 떡값'은 설득력이 없다.순수한 정치자금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가를 염두에 둔'뇌물'이고,적어도 미래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는'보험'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으로 아는 사실이다.” -교육계 촌지는 어떻게 처리해야하나.“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촌지 특별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촌지는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다.특히 백년대계인 교육에서 성장기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의 왜곡된 관행에 접한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한 분야다.” ◇權위원장 약력▶경북 안동(59)▶서울대법대▶서울대환경대학원교수▶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오병상.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