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 중국행 화물 ‘겨울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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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일 오전 10시 부산시 용당동 부산북항 신선대부두. 싱가포르 선사인 APL사 소속 컨테이너선 그랜드뷰호(3만6000t급)가 4번 선석에 접안하자 대형 컨테이너크레인(갠트리크레인)이 신속하게 화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부두에 내리는 화물 대부분이 부두 밖으로 실려나가는 것과는 달리 이날 하역되는 컨테이너는 불과 50여m 떨어진 야적장에 쌓였다.

22일 부산 북항 신선대 부두에 접안한 외국 선박들이 화물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세계 주요 항만이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부산항에선 비용 절감을 겨냥한 환적 화물이 증가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그랜드뷰가 싣고 온 화물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기준으로 1319개. 중국에서 미주지역으로 가는 화물이다. 실려 있던 화물을 다 내린 그랜드뷰는 이번엔 야적장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 629개를 선적한 뒤 이날 오후 북중국 다롄(大連)·톈진(天津)항으로 떠났다. 그랜드뷰는 지난해 10월 21일부터 부산∼북중국 항을 일주일에 한 차례씩 운항하고 있다. 홍콩의 OCCL 페이스호도 지난해 11월 16일부터 부산~북중국 항을 오가고 있다. 이 선박은 지난 18일 2296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왔다 내린 뒤 812개를 싣고 중국으로 갔다. 그랜드뷰호와 OCCL 페이스호의 공통점은 미주 지역과 북중국을 오가는 수출입 화물을 실어나르는 것이다.

이처럼 거쳐 가는 환적(換積) 화물로 부산항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국제적 경제위기로 물동량이 감소하는 불황 속에서 오히려 활기를 띠고 있다. 미주와 북중국을 오가던 대형 컨테이너선(모선·母船)들이 날씨가 나쁜 겨울철 북중국항 입항을 기피하면서 반사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APL사 등 세계적인 선사들로 구성된 뉴월드얼라이언스(NWA)는 지난해 10월부터 ‘APL 코리아 128호’ 등 대형 컨테이너선의 북중국 항구 직항 서비스를 중단, 부산항에서 환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랜드얼라이언스(GA)도 북중국항 화물을 부산에서 환적하고 있다.

부산항에서 환적되는 북중국항 컨테이너는 월평균 2만 개. 신선대 터미널이 한 달에 처리하는 물동량의 10% 수준이다. 이 덕분에 부산항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수출입 화물이 크게 감소했지만, 환적 화물은 증가하는 ‘이상 현상’이 빚어졌다. 부산항만공사 노기태 사장은 “북중국 환적 화물이 부산항에 한 달에 200만 달러 이상의 추가 수입을 올려주고 있다”며 “부산항의 첨단 시스템 등 장점을 최대한 홍보해 북중국 환적 화물을 계속 유치해 불황으로 인한 물동량 감소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대형 선사들이 북중국 항구 입항을 기피하는 이유는 운항 스케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롄과 톈진 등 북중국 항구는 겨울철 안개 끼는 날이 많고 항로에 파도가 높아 운항 시간이 많이 걸려 부두에 발이 묶이기 일쑤라는 것이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수출입 물량이 대폭 감소하는 점도 대형 선사들이 북중국항 입항을 꺼리는 한 원인이다.

일본 NYK사 부산지사 김철희 차장은 “날씨가 나빠 작업을 할 수 없는 날이 부산항은 연간 보름 정도에 불과하지만 북중국 항만은 3~4개월이나 된다”며 “운항 스케줄을 맞춰 서비스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항만공사 박호철 마케팅 팀장은 “북중국 화물의 부산항 환적에 따른 선사들의 이익을 분석 중”이라며 “구체적 수치가 나오는 대로 중국에 입항하는 대형 선사들을 상대로 부산항 환적 전환을 적극 권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진권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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