點과 線으로 피워낸 엄정순의 '꽃' -22일까지 금산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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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대 학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직업화가의 길을 택해 일본으로 떠났던 엄정순(36)씨가 가슴 가득 꽃을 안고 돌아왔다.

금산갤러리에서 22일까지 열리고 있는 엄씨의 근작 개인전에는 장미.튤립.백합같은 꽃들이 1백호,1백50호 크기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꽃에는 색이 있어 현란하다.그러나 엄씨의 꽃은 조용하리만치 가라앉아 있다.

꽃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그녀가 관찰한 것은 꽃잎의 널따란 면이 아니라 꽃잎의 얇디얇은 두께다.한잎 한잎 허공을 날아오를 정도로 가벼운 꽃잎에는 무게가 없어 보인다.다만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뿐인 것처럼. 그래서 그녀는 면을 버리고 가는 선을 택했다.도구도 끝이 뭉툭한 붓보다 유화물감을 연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오일스틱을 선택했다.

그녀의 꽃은 수백,수천의 선이 겹친 모습으로 그려져있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을 그려내는 선들이 겹치고 포개지면서 무수한 점들이 환원돼있음을 볼 수 있다.마치 점묘파(點描派)의 수법을 보는 것같다.

면을 버리고 선을 택한데서 동양화적 발상을 느낀다면 점들이 중첩돼 면처럼 보이는데서는 다시 서양화쪽 사고를 감지할 수 있다.절묘한 동.서양화의 결합이자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에 유학한 엄씨는 93년부터 건국대 전임강사를 지냈다.현재는 일본 나고야시 교외에서 작업중이다.

<사진설명>

엄정순작'꽃-공간' 227.3×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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