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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 정부는 덫을 놓지 마라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외부에서 열리는 회의 몇 곳에 참석했습니다. 강연도 했고, 듣기도 했습니다. 회의에서 꼭 나오는 게 경기부양 대책으로 제시된 4조 위안입니다. "4조 위안을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조달하느냐",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겠느냐", "우리에게 먹을 떡이 있겠느냐"라는 등의 여러 질문이 제기됩니다.

4억 위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의 경기부양의 골간을 다뤄야 하니까요.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 해답을 찾아봅니다.

쉬샤오넨(許小年) CEIBS교수를 칼럼 강사로 초청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중국 경제 현황과 4조 위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중국 경제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미국 경제학 분야 명문인 인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UC데이비스에서 대학 박사학위를 했습니다.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아들이 이끌고 있는 중진(中金)공사의 연구담당총경리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번 칼럼은 그가 최근 CEIBS에서 한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4조위안의 경기대책뿐만 아니라 중국 거시경제, 경제구조조정 방안 등을 폭넓게 다뤘습니다. 중국경제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초벌 번역은 우리 연구소의 선우경선씨가 해주었습니다. 가급적 핵심만 간추렸고, 간간이 저의 의견을 넣었습니다.

조금 길어도 끈기 있게 읽어 봐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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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부양책을 두고 말이 많다. 역시 자금 출처가 가장 큰 관심이다. 따져 보자. 1조위안은 중앙정부가 조달할 계획이란다. 올해 5000~6000억 위안 규모의 특수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본다. 중국정부의 재정 상황으로 볼 때 문제 없다. 중국의 재정적자 비율(GDP대비 재정적자액)은 국제 위험선으로 여겨지는 3%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머지 3조 위안이다. 이 돈은 지방정부, 은행, 기업 등이 내놔야 한다. 그들의 여건을 보자.

우선 지방정부. 지방정부는 지금 그만한 자금력이 없다. 지방정부의 최대 세원은 토지다. 국가 소유 땅을 팔아 지방정부 곡간을 채운 것이다. 이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얘기다. 작년 1~11월 지방정부가 토지 매각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1년전에 비해 1/3 수준에 불과했다. 1/4, 1/5에도 도달하지 못한 도시도 많다. 올해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찾지 못한다면 지방재정은 자신의 일 조차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들이 돈을 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은행 역시 예전같지 않다. 중국은행 공상은행 등 국유 상업은행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 은행은 2000년대 초의 부실채권 위기를 넘기고 이제 막 안정을 회복한 상황이다. 그들이 과연 돈을 선뜻 내줄까? 게다가 상업은행은 이제 상장회사가 됐다.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금에 대한 리스크나 수익성 여부, 자금 회수에 걸리는 시간등을 따진다. 수익성이 없는 대출이라면 주주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은행 돈을 마음 껏 가져다 쓰기는 어렵게 됐다. (최근 상장 상업은행에 투자했던 외국자금이 대거 이탈한 것을 생각하자. 참조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0389202 )

이제 남은 것은 기업뿐이다. 사영기업들은 절대 자금 투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금방 이득이 생길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유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유기업도 이제 많이 달라졌다. 이들은 그동안 영리추구에 길들여져 왔다. 정부 스스로 '돈 벌어오라'고 독려했었기 대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자금 투입으로 인한 손실로 국유자산이 손해를 입게 된다면, 이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정부가 마련하겠다는 1조위안을 제외한 나머지 3조 위안의 출처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국유기업을 억지로 참여시키는 것이지요. 다만 국유기업에 적절한 이익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또 정부보증을 조건으로 은행자금을 국유기업에 투입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이 게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부패입니다. 정부-은행-기업의 부실의 3각고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중국경제의 질적 성장을 꾀하겠다는 후진타오 과학발전관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0430172 )

자금 조달 문제는 해결됐다고 치자. 그렇다면 4조 위안을 투입하면 예상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우리는 1933년 루즈벨트 정부 취임으로 대공황이 마무리 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뉴딜정책이 최대 공로자였다. '케인스주의'가 득세한 이유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뉴딜정책으로만 불황에서 벗어났다는 할 수 없다. 더 큰 해결책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으로 정부 수요가 증폭되면서 정부 지출은 40년대 이후 GDP(국내총생산액)의 50%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경제는 10여년의 긴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불황탈피의 공로자는 루즈벨트가 아닌 히틀러라고도 할 수 있다.

"재정정책으로 인해 불황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작년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한 말이다.

일본을 보자. 일본경제는 1989년부터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 역시 케인즈주의식 요법을 썼다. 10여 년 동안 확대 재정정책을 지속했고, 재정적자 비율은 5%로 국제 경계선을 훨씬 넘어섰다. 10%를 넘은 해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 경제가 회복됐는가? 물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더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제는 재정확대 정책을 지속할 수도 없는 처지에 다달았다는 점이다. 불황초기인 90년대 초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대비 50%에 그쳤지만 지금은 160%에 달 하고 있다. 빚도 구걸할 수 없는 처지다. 다시 부채를 늘린다면 일본은 파산할 것이다. 일본정부가 해외에 발행한 국채는 이미 쓰레기 이하의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일본과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중국을 되돌아보자. 1998년 중국 역시 확대 재정정책을 펼쳤다. 침체되기만 했던 경제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었다. 하지만 수치 분석 결과 경제회복의 주 원인은 다른 데 이었었다.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중국은 98년 주택시장 개혁에 나선다. 주택은 정부(기업)가 배급하는 물건에서 시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열린 거대한 부동산 시장은 자금, 원자재 및 노동시장에 있어 새로운 산업을 창출시켰다. 이 신규 수요는 오늘날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고정자산투자의 1/3이상이 부동산 분야에 몰리고 있다. (참조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0071680 )

다시 말해 중국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개혁과 개방으로 인한 것이다. 무엇을 뜻하는가? 중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케인스주의'가 아닌 '덩샤오핑 이론'이라는 것이다. 덩샤오핑 이론의 핵심은 사상해방이다. 개혁을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찾아내고, 이를 시장경제의 테두리에서 운용하는 것이다. 오직 개혁개방만이 중국의 희망이다. 그래야 내수시장 확대도 가능하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를 깨야한다. 중국경제가 10%이상의 성장세를 달리고 있음에도 실업문제에 시달리는 이유는 서비스업이 약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비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불과하다. 미국 80%, 일본65%, 중국보다 발전이 뒤쳐진 인도 역시 50%에 달한다. 서비스 분야 정부규제가 심하니 이 업종이 활성화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업은 금융, 정보통신,교통 및 운수, 해운항공, 문화교육, 의료위생, 오락매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산업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공간이 방대하다. 금융서비스업을 보자. 지금도 80%이상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은행이 어떻게 생겼는 지도 모른다. 의료 서비스의 낙후로 인해 죽기 직전까지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도시 빈농과 농민이 부지기수다.

정부는 의사들의 월급까지 관여한다. 월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환자들에게 뇌물을 받는 게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어찌 의사의 부도덕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문화오락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 역시 문제다. 영화 한편이 개봉을 하기 위해선 당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뻗어있는 정부의 규제는 우리경제의 발전을 구속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잘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친 덫에 자신이 걸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한한 잠재력이 사그러들고 있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가치의 재 분배다. 정부는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정부가 갖고 있는 돈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창출된 가치를 세금이란 명목으로 걷어들이는 것이다. 덫을 놓지 마라.

두 번째는 선한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르게끔 하는 것이다. 중국의 사영기업은 지하금융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개인은행에 관한 법률이 없다. 쩌장(浙江) 푸지엔(福建)등에 존재하고 있는 수 많은 개인 대부업체들은 모두 불법이다. 이를 합법화한다면 정부 역시 그에 대한 적법한 세금을 걷어들일 수 있다. 중소기업의 융자문제와 취업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한 후 중국 경제는 새로운 발전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GDP 성장율은 5~8%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한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도 일자리 창출은 충분하다. 그게 바로 중국경제가 내수확대를 이끄는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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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샤오넨의 강연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모두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중국 경제학계에서 신(新)자유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인물로 분류됩니다. 그의 강연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한 경제학자의 의견일 뿐입니다. 정부 관리들이 그의 의견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중국 학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합니다.

한우덕
Woody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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