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음악, 오후의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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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을 찾는 이들에게 하루의 여유를 선사하고 있는 도란도란 카페. 사진은 오후팀 이복만(69), 이영자(63), 전숙(62), 우복택(64)씨. (왼쪽부터)

노원 ‘도란도란 카페’의 풍경
큰 창에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내비치면 작은탁자에 앉아 진한 커피 한 잔에 살며시 책장을 넘기는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커피 잔에 이는 잔잔한 파문과 귓가에 맴도는 은은한 음악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세상살이지만 둘이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 미소가 앉는다. ‘도란도란’ 카페는 그렇게 여유를 선사한다.

짧은 넥타이에 베이지색 블라우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정중히 맞는다. 스튜어디스를 연상케 하는 미소와 몸짓 그리고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의 손을 거친 커피 맛도 일품. 이 모두가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만들어 내는 ‘도란도란’ 카페의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이 카페는 서울시의 고령자기업 공모에 선정돼 현재 시의 지원을 받아 10명의 어르신들이 오전․오후 두 팀으로 나뉘어 직접 운영하고 있다. 북부종합 사회복지관 2층에 위치해 주민들의 쉼터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

 “복지관에서 열리는 강좌가 좋아 많이 참여하고 싶은데 중간에 비는 시간 동안 쉴만한 공간이 없어 다른 강좌를 못 듣고 집에 가곤 했어요. 도란도란 카페가 생기고부터 강좌도 많이 듣고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과 친하게 되면서 복지관을 더 자주 찾게 됩니다. 커피도 맛있고요. 할머니들이 너무 친절하세요.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대접 받는 기분이랄까.”

 주3회 복지관을 찾는다는 이숙영(43·상계동)씨에게는 기분 좋은 습관이 생겼다. 아침 일찍 복지관에 나와서 좋은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시를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못다 이룬 시인의 꿈을 도란도란 카페가 일깨워 준 것이다. 이 카페를 기획한 복지관 노인특화팀 황수정(26)씨는 “날마다 배달되는 야채, 과일 등을 담당자보다 더 꼼꼼하게 확인하신다”며 “젊었을 때 실력이 있으셔서 그런지 맛도 좋아 고객들이너무 좋아한다”고 흐뭇해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던 도란도란 카페는 1월부터 주말에도 문을 열고 있다. 주말에 복지관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르신들이 용단(?)을 내린 것. 그렇다고 20만원 받는 월급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정작 어르신들은 마냥 즐겁다.

 “아침에 나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를 겁니다. 나도 아직 사회에 참여할 수 있어 참 뿌듯해요.”

 오후팀으로 일하고 있는 이영자(63)씨는 무역업체를 운영했던 기업가였다. 은퇴 후 무료하던 차에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기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참여를 결정했다. 이씨는 “노래교실에 다니면서 소일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4시간 동안 일하고 다시 개인적인 일도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반겼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숙(62)씨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전문 바리스타에 도전하고 있다. 주1회씩 3개월 과정의 바리스타 학원에 다닌다는 전씨는 “복지관에서 학원비까지 지원해주는데 주위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며 “기왕에 시작한 바리스타 자격시험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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