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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개혁 작업 - 50년 헌집 헐고 전면 재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오는 2000년'신장개업'을 목표로 한 일본의 국가개혁작업에 예상외로 가속도가 붙고 있다.행정.재정.사회보장.경제.금융시스템.교육의 6개분야에 걸친 국가개혁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가 올해 1월 시정연설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국민에게 약속한 과제.처음에는 현 연립정권 자체가 약체인데다 자민당내의 뿌리깊은 족(族)의원세력,노조를 의식한 사민당의 인원감축 반발,관료들의 저항등을 감안할 때 2000년까지 불과 3년동안 개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그러나 금융개혁(빅뱅)을 시작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속속 나오자 국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중 80%가 난제로 꼽히는 중앙부처 축소.재편과제에 대해'실현 가능하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일본의 개혁작업은 단순히 페인트칠을 하고 지붕을 수리하는 차원이 아니다.'50년만에 찾아온 위기'(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를 반드시 극복한다는 각오아래 국가.민간부문의 기능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거대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하시모토 정권은 이를 위해 전통적인 표밭인 농어민과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빤히 예상하면서도 정부재정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의료보험 수가를 올리고 노인수발보험을 도입하는 한편 2000년말까지 22개 중앙부처를 14개로 줄이는 전례없는 기구 개편작업도 진행중이다.

일본의 풍토에서는 보기 드물게 위에서 찍어누르는(톱다운)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중인 하시모토 총리는'말을 꺼낸 사람부터 실천한다'는 금언에 따라 내년 착공예정이던 새 총리관저 신축계획을 동결시켰다.2010년 이전을 목표로 내년에 후보지를 결정하려던 새 수도 건설계획도 보류됐다.

일본 국회는 지난 16일 상법.외환법을 개정함으로써 금융부문 빅뱅의 서막을 열었다.상법 개정안은 스톡옵션(사전에 정해진 가격으로 자사 주식을 구입할 수 있는 권리)을 전면 허용한 것이 골자로 일본 특유의 종신고용.연공서열제를 파괴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외환법의 경우 법을 바꾸면서 종전의'외국환관리법'에서'관리'라는 단어를 삭제했다.국가가 관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선언인 셈이다.

새 외환법은 주변 여건이 함께 정비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일본 금융시장을 공동화시킬 수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를 감행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종전 시스템으로는 변화한 국제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금융외 부문에서도 시장원리가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지난 27일 연립여당은 한국의 공기업에 해당하는 특수법인중 도시정비공단등 11개를 우선 민영화한다는데 합의했다.같은 날 제1야당인 신진당은 87개 특수법인을 3년내에 몽땅 없애자는 특수법인 개혁법안을 이번 회기중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개혁하지 않으면 공멸(共滅)한다는 공감대는 정치권만이 아니다.전통적으로 좌파세력의 온상인 일본 최대의 노조단체 렌고(連合)는 지난 19일 열린 중앙토론회에서 한바탕'시장원리 논쟁'을 벌였다.정부기구 축소등 현재 진행중인 개혁작업에 위기감을 느낀 관공서노조가“시장원리에 맡기면 강자만 유리해진다”고 비판하자 민간노조쪽에서“룰이 확립된 시장원리는 결코 약육강식을 의미하는게 아니다”고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렌고같은 단체에서 시장원리 옹호론이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사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총대를 멘 하시모토 정권을 둘러싼 환경이 낙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정치권과 관료층등 사회 각계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연립동료인 사민당의 반발은 자칫하면 연립정권 해체를 불러와 하시모토를 하루아침에 실각시킬 수 있다.

국가의 하드웨어 정비에 치중한 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총리의'일본열도 개조'운동의 소프트웨어판에 비유되는 일본의 개혁작업이 다음 세기의 일본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주목된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사진설명>

일본 국가개혁의 슈퍼기구인 재정구조개혁회의가 27일 총리실에서 열렸다.사진은 이른바 개혁 3인방인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로부터). 지지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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