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떡으로 빚어본 설 손님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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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12면

“요즘 새벽 꽃시장을 가면 어찌나 예쁜 게 많은지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작은 꽃송이, 나뭇가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 때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대부분의 사람은 겨울나기에 지쳐 봄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정현씨는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가 새벽 꽃시장이 가장 활기 넘치는 때라고 말한다. 활짝 핀 큼직한 꽃송이부터 수줍게 갓 틔운 작은 봉오리의 꽃무더기까지, 이 시기에 꽃 종류가 가장 다양하다고. 이것을 조금 사다가 접시 위 떡 사이에 꽃잎 몇 개만 놓아도 아름답고 멋진 상차림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1 김밥을 만들 때처럼 둥글게 만든 약식을 한입 크기로 자른 후 파릇한 보리와 함께 매치했다 2 한입에 쏙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의 인절미와 견과류 소를 넣은 앙증맞은 경단으로 꾸민 접시. 크기가 작고 부피감이 적은 색색의 떡은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꽃잎처럼 연출해도 좋다

“우리의 전통 떡으로 만드는 상차림이니까 동양화 한 점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동양화의 미덕은 선과 여백이죠. 이것만 기억하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여백을 살리라는 것은 꽃과 떡이 서로 묻히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적당히 공간을 만들어주라는 얘기다. 접시에 수북이 담아내는 게 우리의 인심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묘해 접시 위에 떡이 몇 개 없으면 희소가치성에 대한 판단 때문에 먼저 얼른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3 동그란 찹쌀떡 위에 잣·밤·대추가루 등을 올려 다양한 색의 조합을 보여주었다. 옹기그릇을 가로질러 장식한 나뭇가지는 설류화다 4 호박과 쑥을 넣어 만든 네모난 인절미와 약식을 함께 놓았다. 인절미 하나마다 대추와 파슬리로 예쁜 꽃이 수놓여 있다. 호박인절미와 국화의 노란색을 대칭되게 배치하고 굵은 소나무 가지로 자연의 느낌을 더했다 5 쑥을 넣어 만든 가래떡을 먹기 좋게 잘라 곱슬버들에 핀 잎인 양 놓았다. 붉은 낙산홍 열매와도 색 조합이 자연스럽다 6 한 접시에 한 종류의 떡을 내놓는 게 일반적이다. 가끔 내놓을 떡의 종류가 많을 때 이렇게 큰 접시를 이용해 다양한 떡을 골고루 소개해보는 것은 어떨까. 눈요기만으로도 배가 부를 듯

선을 살리라는 조언은 곱슬버들이나 소나무 가지처럼 자연스럽게 휘어진 재료를 적극 이용하라는 것이다. 떡이나 꽃은 동그랗거나 네모난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어서 이들만을 이용해 조합해 놓으면 자칫 덩어리감만 커질 뿐 아름다운 생동감은 떨어질 수 있다. 이 또한 보고 먹는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접시 위에 ‘자연을 담아내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또 좋아한다. 편안하고 신선하며 향기로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자연 요소 중에 이런 믿음에 가장 적합한 것은 나무다. 특히 나뭇가지의 곧고 휘어진 선은 인위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선의 미학’을 보여줌과 동시에 접시 위의 빈틈을 자연스럽게 채워준다.

“명절에 온 가족이 다 모이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니까, 특별한 날에 어울리도록 이벤트를 해보는 것도 가족과 손님 모두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이겠죠?”
마지막 조언은, 담아내는 그릇 자체를 전혀 다른 소재로 바꿔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주방에서 사용하는 유백색 접시는 평범해 큰 기대감을 주지는 못 한다.

접시에 색깔이 있거나 문양이 그려져 있다면 자칫 접시 위에 올려진 꽃과 떡, 나무들과 부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커다란 기와, 넓적한 돌, 결이 살아 있는 나무판…우리의 전통 명절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재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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