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금융위기 다시 번지나”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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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불씨는 아직 꺼진 게 아니다. 연초의 주가 상승세로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15일 금융시장의 불안은 이를 일깨워 준 셈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입 덕에 경제위기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작된 국내외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와 경제지표 발표는 투자자들을 얼어붙게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우선 상당수 국내 기업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면서 연초 랠리를 기대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15일 발표된 포스코의 실적도 그렇다. 포스코는 2008년 연간으로는 경영 목표를 달성했지만, 4분기만 떼어내 보면 기대 이하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3분기에 비해 각각 5.8%, 29.6%, 40.9%씩 감소했다. 이는 금융정보데이터 제공 업체인 FN가이드가 증권사들의 포스코 실적 전망을 종합 평균해 산출한 시장 기대치에 비해 각각 7.3%, 10%, 30% 미달했다.


올 1분기 실적 전망은 더 어둡다. 4분기의 시작인 10월보다 12월에 글로벌 경기가 더 나빠졌고, 이는 올 1분기에 한층 심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가 10개 국내 은행의 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점도 금융시장엔 부담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심하게 흔들리던 국내 은행들은 최근에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있다. 나름대로 외화도 조달하고, 원화자금 사정도 나아졌다.

이때 무디스가 뒤늦게 등급을 낮추면 해외 자금 조달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조달 비용이 오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계적으로 돈의 최종 수요자들에게 전가되고, 그 과정에서 주가와 금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외화 조달이 빡빡해진다는 징조가 나타나면 원화가치도 더 떨어진다. 조병문 KB증권 상무는 “무디스의 등급 하향 조정 검토가 뒷북치기 식의 조치이긴 하지만 은행들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의 실적도 기대 수준 이하다. 특히 금융회사의 실적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14일(현지시간) 미 증시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그중에서도 16일로 예정된 씨티그룹의 실적 발표는 태풍의 눈으로 작용했다. 씨티는 이번에도 대규모 손실을 낼 전망이다. 5분기 연속 손실이다. 현재 월스트리트에서 예상하는 씨티의 4분기 적자는 100억 달러 수준. 씨티를 시작으로 도이체방크, HSBC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의 실적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의 부진은 겨우 진정돼가던 금융위기가 다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금융위기가 각국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해소됐고, 지금부터는 실물경제 구조조정이 문제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며 “그러나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또다시 금융회사의 부실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 세계 투자자들은 금융위기 재확산을 겁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달 중으로 나올 국내외의 각종 경제지표와 2월 중순까지 이어질 기업들의 4분기 실적 발표가 지속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이환 KB증권 수석연구원은 “이미 나온 지난해 12월의 한국과 미국의 고용지표를 감안할 때 다른 지표들도 전년에 비해 나빠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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