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백악산 백사실 6개월째 고증나선 향토사학자 장석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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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검정에서 백악산 서북쪽 산자락에 난 오솔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다보면 은행나무 병풍속에 숨은듯 아담한 연못 하나가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바로 옆 무너져내린 돌계단을 타고 넘으면 널찍한 집터에 자리잡은 배드민턴장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세칭 백악산 백사실이다.

예닐곱개의 정갈한 석축과 어색한 철문을 닫아건 석빙고만이 예전의 흥성을 말해줄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곳을 문화유적으로 되살리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향토사학자 장석민(張錫敏.70.종로구부암동)씨. 인천태생으로 세검정에 자리잡은지 30년 남짓.수백년씩 대를 이어 사는 토박이가 유달리 많은 이곳에선 터줏대감 행세조차 할 수 없지만 張씨의 백사실에 대한 집착은 누구 못지않다.일흔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부암.평창동의 노인들을 찾아다니고 구청 지적과 창고에서 85년전의 토지대장을 뒤지며 백사실의 유래찾기에 몰두한지 6개월 남짓. 張씨는 백사실 부근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을 모조리 탁본 떠 그 의미와 필체를 연구하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환갑 때까지 무역업을 해온 그의 변신에 대해 본인은“열살때 숙부를 따라 산길을 돌아 내려오다 백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태에 가슴이 설는데 언젠가부터 훼손이 시작돼 이젠 그 흔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 아쉬웠다”고 설명한다.

그간의 조사로 張씨가 내린 잠정결론은 백사실은 왕족의 별장으로 그 명칭은 조선시대 이지역 이름인 백석(白石)에서 유래했다는 것과 집터에서 5백여 떨어진 암벽에 새겨진'백석동천(白石洞天)'이란 글귀는 추사(秋史)의 작품이란 것. 결론이 여기에 이르자 張씨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구청과 문화재관리국등을 찾아다니며 문화재 지정을 요구했고 현재 암벽 글귀의 정확한 주인을 찾기 위해 암벽에 대한 적외선 감식까지 계획중이다.

張씨는“동천(洞天)이란'신선이 놀던 곳'을 뜻하며 백사실은 산속에 있는 왕족,특히 대원군의 또다른 별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백사실을 정확히 고증,문화재로 지정.복원한뒤 눈감는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은종학 기자

<사진설명>

백악산자락 백사실 일대 바위에'白石洞天'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추사 김정희선생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장석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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