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극단 마방진 극공작소 ‘강철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작품엔 이런 대목이 있다. 가업을 잇지 않고 춤에 푹 빠진 아들을 아버지는 혼낸다. “내 아들, 내 핏줄이 통한 마이 싼(son)! 지랄 염병 그만 부리고 내 우산 밑으로 겨 들어 오니라. 초장부터 니는 씨이오(CEO)! 가오는 잡아준다 이 애비가. 아니 그러면 사방 왼간디서 니 잡아 먹을라고 성공한 인간들이 안동 한우 여물 씹듯이 널 씹어댈 테다. 나헌티 오면, 유치한 소주 말고 재크 다니엘 퍼마시고, 지하철 안 타고 벤즈 타고, 저기 타워팰리스는 못 돼도 얼추 비슷한 짝퉁팰리스는 살 터. 안 그냐?”

열처리 공장 사장 아들 ‘왕기’역을 맡은 배우 조운씨는 진짜 무용수처럼 빼어난 춤 솜씨를 발휘한다. [마방진 극공작소 제공]


아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다. “나는 댄서! 잠자코 5분만 있어도 오금이 쩍 붙고 1시간만 등 붙여도 욕창에 시달리는 나는야 그야말로 댄서! 그럼 진작, 공대를 가라고 세뇌를 시키시지 왜 이제 와서 무용과 우등 졸업한 나를 그 엄한 길로 내 모십니까. 미친놈 삽질해대듯 춤만 추고 살다가, 이 곰팡이 향기 나는 마룻바닥, 그 위에서 실신하듯 쓰러질 겁니다.”

대사량이 많기만 한 게 아니다. 빠르다. 속사포 같다. 숨을 꼴깍 넘기며 ‘따따따’ 쏘아대는 배우들을 보면 과거 인기 개그 코너였던 ‘수다맨’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허공을 날아다니다 ‘쨍’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부딪치는 칼날처럼, 말은 빠르게 충돌한다. 긴장감은 그렇게 증폭돼 간다.

이야기는 황당하다. 아버지의 가업을 어쩔 수 없게 잇게 돼 열처리 공장에 들어간 아들. 노조는 “낙하산 인사”라며 극렬 저항하다, 급기야 아들을 인질로 삼는다. 열처리로에 갇힌 아들. 사고로 기계는 돌아가고, 70분간 갇힌 아들은 이후 몸이 변해간다. 인간의 몸이 아닌 스테인리스가 된다. “새로운 육체의 탄생”이라며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한다. 수십억원의 CF 모델 제의도 잇따른다. 사업주의 비정함, 노조의 변질 등이 동시에 통렬히 묘사된다.

정제되지 않은 ‘거칢’은 작품의 본질이다. 빠르게 쏟아내는 대사처럼, 배우들은 봉을 잡고 날아다니는 등 무대를 강력하게 장악한다. “연극의 본질은 에너지”라는 고 연출가의 평소 철학이 그대로 분출된다.

그러나 좀체 잡히지 않는 주제 의식, 툭하면 줄기를 벗어나는 잔가지들은 극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날것의 생동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묵직하게 밀고 나가기. ‘강철왕’에 남겨진 숙제다.

최민우 기자

▶연극 ‘강철왕’=2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02-764-7462.

[J-HOT]

▶ '서울대보다 좋다' 'NO.1'…경영대 전쟁

▶ "정준양 어때?" 이구택 회장 말에 '깜짝'

▶ 인천공항 본 영국공항공사 간부 "놀라워라"

▶ 빨래, 밥짓고…미술관서 7년간 '동거'

▶ '3000 궁녀' 몸 던진 낙화암 인근은 수심 1m 이하

▶ 발 구르는 힘으로 발전 나이트클럽 손님 넘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