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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기자가 만난 사람] 미술사학자 백인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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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백인산씨는 “밥 짓고 빨래하는 일도 공부였다”고 말했다. 밥이 질거나 설익으면 불호령을 내리는 스승의 뜻이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최승식 기자]


연(緣)의 첫 장면은 어느 봄날, 절간 같은 간송미술관 연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소년 인산은 맏형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섰다가 처음 가보는 큰 집에서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화분이 많은 고즈넉한 방에 앉아 조그만 사발에 따라주는 걸 마셨다가 입맛이 써 혼났다. ‘뭐 이런 구정물 같은 걸 줄까’ 싶었다. 녹차의 첫맛은 썼다. 학예연구실장이던 최완수(67) 선생은 소년이 물건임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어느 날, 혼자 찾아간 형에게 최 선생은 물었다. “백인산은 뭐하나.” 당시 홍제동 무허가촌에서 자취를 하던 백씨는 다음 날 옷 보따리 하나 챙겨 간송미술관에 몸을 부렸다. 최 선생 말씀은 간단했다. “흑표범 한 마리를 데려다놓은 것 같구먼.”

백인산(左)씨는 최완수(右)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그림자로 7년을 한 몸처럼 살았다.

그로부터 7년을 꼬박 선생님의 그림자로 살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쯤 자리에 들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1998년 결혼해서 살림을 날 때, 스승은 그에게 물었다. “공부는 다 했느냐?” 10년쯤 지나니 이제야 그 뜻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잘 노는 놈이 공부도 잘한다고 하셨죠. 어디 가나 제자를 데리고 가시는 건 ‘제일 무서운 게 제자’라는 생각 때문이셨고요. 제자가 보는 앞에서 사심을 품을 수는 없다는 거죠. 남에게 시비 걸 일 있으면 제 일을 더 하라, 공부는 남 의식하면 못한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만이 학문이 아니다, 풍류를 알아야 제대로 된 선비다…, 선생님이 제 몸에 각인시켜 주신 말씀이 평생 화두죠.”

말이 이렇게 짧은 사람이 있을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간송미술관 내제자 모습은 한결같다. 지난 40여년 백인산씨 앞뒤로 단단히 인연을 쌓은 인물이 30여 명. 이제야 사람 축에 끼이게 됐다고 입을 뗀 백씨는 말했다. “학문공동체이자 도반의 길을 걷는 선후배와 공부에 목숨을 걸고 그저 걸어갈 뿐이죠.” 

정재숙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백인산씨는=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미술사학자. 1991년 간송미술관에 들어간 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해 폭넓게 연구해 왔다. 조선시대 회화, 특히 문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사군자화 연구에 몰두해 논문 ‘탄은 이정 연구’ ‘추사 화파의 묵죽화 연구’ 등을 썼다. 저서로 『조선의 묵죽』, 공저로 『추사와 그의 시대』 『진경시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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