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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손님 없어 점심때만 문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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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차 부평 공장은 이 지역 경제의 ‘젖줄’이다. 그런데 1공장이 지난해 12월 22일, 2공장은 12월 1일부터 휴업이다. 1공장이 1월 5일 문을 열었고 2공장은 13일 조업을 재개 할 예정이다. 주변상인들의 숨통이 그나마 트이는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가 GM대우차 부평 공장 일대 상권을 둘러봤다. 공장이 일부 문을 닫은 1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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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만에 조업을 재개한 GM대우 부평 1공장 직원들이 서문 인근 상점가를 걷고 있다.

1월 7일 오전 6시 GM대우 본사가 있는 부평공장 서문 삼거리. 연일 이어지는 건조한 날씨 탓에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도 인기척 대신 마른기침 소리를 냈다.

GM대우 부평 2공장 주변 상권 #대부분 가게 매출 30% 이상 줄어…호프집은 밤 10시 넘어야 ‘첫 손님’

이날 공장보다 먼저 깨어난 건 대우아파트 정문 옆에 있는 베아또제과점의 오븐이었다. 제과점의 전면 유리창은 벌써부터 수증기가 이슬처럼 맺혀있었다. 제빵사 두 명이 빵 반죽을 끝내고 모처럼 허리를 편 7시에도 거리는 어두웠다.

40분 동안 발효를 끝내고 달궈진 오븐에 반죽을 집어넣으니 그제서야 보름 만에 조업을 재개한 부평 1공장 굴뚝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관리부서의 5년 차 직원은 “휴업 중에 가끔 나왔지만 낯설기는 했다”고 오랜만의 출근 소감을 밝혔다.

이날은 협력업체에서 파견근무를 나온 A씨에게 첫 번째 출근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파트에서는 나 하나만 새로 들어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첫 출근의 설렘 대신 불안함이 역력했다.

생산라인과 일부 부서 출근시간인 오전 8시가 지나자 베아또제과점 주인 김씨 내외가 출근한다. 김씨는 마침 들어선 외국인 손님과 익숙한 눈인사를 나누고 얼른 2800원짜리 샌드위치 하나를 건넨다.

김씨는 “우리 단골 중에 GM대우 직원은 매일 아침 오는 외국인 한 명과 여직원 한두 명이 전부지만 텅 비었던 거리에 사람들이 다시 지나다니니 심리적으로는 조금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단골을 보니 반갑기는 하더라”며 웃었다.

빵집 단골손님 다시 드나들어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본사에는 1·2공장, 기술연구소, 지원부서가 모여있다. 마이클 그리말디 사장 집무실도 이곳이다. 서문은 다른 출입구와 달리 왕복 4차로 도로인 세월천길이 하나 더 나 있다. 이 길을 경계로 양편에 빽빽하게 들어선 상가들이 통칭 GM대우 서문 상권이다.

서문 상권은 대우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정문 출입구를 경계로 또 한번 나뉜다. 서문과 더 인접한 곳과 대우프라자에서 마장길까지 이어져 있는 상권이다. 서문과 가까울수록 GM대우 직원들 위주로 영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휴업으로 더 많은 타격을 입은 곳도 좁게 보면 이 지역이다.

식당만 12곳이 밀집해 있다. 이 중 한 식당은 벌써 몇 개월째 매물로 나와 있다. 휴업 기간 중에는 아예 점심때만 문을 열었고 토·일요일에 문을 닫고 지낸 지 오래다. 한 중식점 주인은 “조업이 재개됐지만 (예전보다) 5분의 1이나 나올까 말까 한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웃한 설렁탕집 주인도 “매출이 20% 정도 회복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문과 가까운 2공장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휴업을 시작했다. 조업 재개일도 1월 4일에서 9일로 미뤄졌다. 1공장이 라세티, 젠트라 등 소형차를 생산하는 데 반해 2공장은 토스카, 윈스톰 등 대형 SUV 라인이기 때문이다. GM 본사가 휘청거리게 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 SUV는 경기에 가장 민감한 차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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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술연구소가 청라지구로 이미 이전을 시작한 점도 서문 상권 상인들의 골칫거리다. 서문 맞은편의 한 식당 주인은 “2공장 사람들은 벌써 한 달도 넘게 출근을 안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와야 우리가 좀 살아난다”고 말했다. GM대우 조업 중단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역시 식당과 술집이다.

한 식당은 주인, 주방장, 홀서빙 전체 직원이 모두 GM대우 근로자의 부인이다. GM대우의 생산라인 직원들은 조업 중단 기간 중 평균 월급의 70%만 받았고 조업이 재개된 지금도 잔업이나 주말특근이 모두 없어져 집으로 가져가는 돈이 꽤 줄었다. 이 식당 사람들은 안팎으로 힘든 셈이다.

이곳을 포함해 대부분의 식당 주인들은 한결같이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고 했지만 저녁 늦게까지 손님이 전혀 없거나 한두 테이블에 불과한 곳이 많았다. 한 식당은 인건비 부담에 홀서빙을 하던 직원을 그만두게 하고 팔순 노모와 함께 점심때만 영업하고 있다. 거리에는 점심때만 문을 여는 식당이 두어 곳 있었다.

술집은 그 강도가 더 셌다. 한 호프집 주인은 “1년 중 1월 매출이 가장 적지만 이번 주가 제일 안 좋다”고 말했다. 술집들 대부분은 문도 늦게 열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첫 손님을 받는 곳도 많았다. 서문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한 호프집에서 만난 13년 차 생산라인 직원은 “회식이 있을 때 말고는 서문 근처에서 술을 마셨던 게 벌써 몇 달 전 얘기”라며 “예전에 어려움(대우차 대규모 인원 감축)을 겪어봤던 사람치고 지금 몸조심 안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예정지 많아 권리금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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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자 GM대우 점퍼를 입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길을 건넜다. 그나마도 가까운 식당은 대부분 지나치고 대우프라자까지 종종걸음을 놓는다. 관리부서의 한 직원은 “(조업 재개 이후) 사장이나 임원들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모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야 오죽하겠느냐는 얘기다. 서문 상권에서 GM대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비율은 상당히 줄었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얘기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들도 “언제 적 GM대우 얘기냐”며 “대우 아파트나 주변 주택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문 상권의 진짜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서문 상권의 핵심 역할을 하는 대우프라자 1층 상점 권리금이 여전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평균 5000만원, 많은 곳은 7000만원까지 한다. 업종 변경을 하는 경우에도 지급하는 바닥권리금은 1500만원이 기본이다. 대우프라자 맞은편에는 한 피자 체인점이 신규입점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현장소장은 “이 지역은 상권이 튼튼하기 때문에 새로 문을 여는 것으로 안다”며 “5000만원 내외인 권리금을 포함해 2억2000만원 정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 출신으로 청천동에서 6년째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는 이재준씨는 “GM대우 임직원들이 서문 상권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30% 정도”라며 “통근버스가 오후 7시까지 다니기 때문에 서문 상권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GM대우로 덕 보는 곳은 점심 장사하는 식당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대우아파트 단지 하나에만 2200세대가 살고 있어 구매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기자들이 한두 달 사이에 수백 명은 왔다간 것 같은데 도대체 뭘 쓰는지도 모르겠다”며 넌더리부터 쳤다. 그는 “서문이 먹자골목까지는 아니지만 단순히 GM대우 상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문 상권의 노른자위 점포의 권리금이 여전한 것은 이곳이 GM대우에서 자립했다기보다는 숨어있는 수혜가 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불과 100m 떨어져 있는 흑룡군인아파트가 조만간 재개발에 들어간다. 세월천길에서 한 발짝 들어간 골목에서는 일부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인천시가 토지를 매입해 도로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 입구와 500~600m가량 떨어져 있는 마장길 뒤편의 넓은 주택가도 재개발 예정지역이다. 인구가 57만 명인 부평구에 거주하는 GM대우 직원 수는 4250명. 청천동에 있는 부평 1·2공장에만 1만1000여 명이 상주한다. 이들이 갑자기 보름 이상 자취를 감췄으니 좁은 서문 상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분 가동된 지가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부평구청의 한 과장은 “부평에 사는 GM대우 종사자가 지역 내에서 외식 한 번씩만 해도 액수가 상당하다”며 “구청 차원에서 GM대우 차 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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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공장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서문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주변 학원 매출도 크게 감소

인천시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부평구에 거주하는 GM대우 임직원들이 받는 총급여는 2217억원이며 이들이 지역에서 소비하는 액수는 연간 1552억원이다. 시청은 2년 전부터 ‘GM대우차 사랑운동’을 펼쳐 군·구 및 공단 등 관내 공공기관에 업무용 차량으로 GM대우차를 구입하자는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부평구청은 반상회를 통해 “구민들에게 GM대우차를 반드시 구입해달라”는 홍보물을 배포했다. 서문에는 GM대우 공장만 있는 게 아니다. 중견·중소기업 공장도 많다. 이 중 한 전자업체는 올해 들어 직원 40명 가운데 27명을 내보냈다. 이 업체 한 직원은 “미국이 GM에 구제금융을 집행한 것처럼 우리 정부도 지원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직원은 “직원 절반 이상을 내보낸 우리한테도 며칠 전 부평구청이 ‘GM대우차를 사달라’고 협조를 요청해 왔는데 쓴웃음만 난다”고 털어놨다. 청천동의 A학원은 성수기인 겨울방학 시즌에 수강생 숫자가 줄었다. A학원 원장은 교육비는 가장 나중에 줄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제는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경기침체에 연동돼 움직이는 것 같다”며 운영하던 학원 숫자를 줄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A학원 원장은 “수강료가 과목당 4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인데 아이 둘을 보내면 40만원이 넘으니 가정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외방 등으로 빠져나가는 수강생이 많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1월 8일 점심 시간에는 한눈에 봐도 전일보다 3배 이상은 되는 GM대우 직원들이 서문으로 나왔다.

몇몇 식당은 오랜만에 사람이 가득 찼다. 식당 셔틀버스가 사람들을 서문에서 태우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석 달 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규모다. 한 공장 관계자는 “일부에서 회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GM대우 직원들이 오랜만에 눈에 많이 띈 이날 세월천길 노상주차장도 함께 바빴다. 이곳은 주차요원 8명이 구역을 나눠 오래전부터 근무해 왔지만 12월 1일부터는 4명만 나오고 있다.

60대를 훌쩍 넘긴듯한 이들 주차요원은 대로 건너 주차지역까지 맡고 있어 수시로 왕복 4차로의 큰 길을 건너다녀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좀 다니니까 겉보기는 낫구먼.” 선글라스를 쓴 60대 주차요원이 지나다니는 차들에도 아랑곳 않고 또 한 번 대로를 건넜다.

부평=한정연 기자·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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