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책임한 국민연금 폐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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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보험료 강제징수를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선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신용불량자와 생계곤란자 등에 대해 체납처분을 하지 않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연체금을 면제하는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폐지론까지 나올 정도로 국민의 불만이 커진 것은 일차적으로 제도의 부분적 미비와 부실한 관리에 이유가 있다. 우선 지역가입자의 72%가 제대로 소득파악도 안 되는 상태에서 강제징수를 위해 추정소득을 바탕으로 무리하게 독촉과 압류를 하다 보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어려운 저소득층으로선 몇십년 후에 매달 몇십만원을 받기 위해 수만원씩의 보험료를 낸다는 것이 사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강제징수를 완화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제도를 폐지하거나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인터넷상에선 연금재정이 고갈돼 원금조차 못 찾을 것이라는 주장이 유포되고 있지만 제도를 운영 중인 160개국의 사례를 비춰봐도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정부도 연금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구조로 연금개혁을 추진 중이다. '용돈연금'이라는 비판도 정상적인 경우 낸 돈보다 받아가는 돈이 훨씬 많기 때문에 사실과 거리가 있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2019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112만명이 연금을 받고 있으며 5년 뒤엔 수령자가 300만명을 넘게 돼 본격적으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하게 된다. 노후 소득보전을 위한 핵심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정부는 국고가 지원되는 특수연금과의 균형을 맞추고, 기금운용을 투명하게 하고,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등의 제도보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