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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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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다. 세계사적으로 가장 큰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 꼽힌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슬람은 출발부터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마호메트는 이미 600년 전 예수가 정리해둔 종교에 도전했다. 인간의 원죄를 대속(代贖)해 십자가에 못박혔고, 다시 부활함으로써 신의 아들임을 입증한 구세주(예수)를 여러 예언자 중의 하나로 격하시켰다. 대신 자신이 마지막 예언자라며 새로운 신(알라)의 가르침을 경전(코란)으로 남겼다. 종교라는 정신적 도전은 곧 물리적 현실이 됐다. 무슬림들은 불과 100년 만에 '알라'의 이름으로 북아프리카를 돌아 유럽대륙(스페인)을 점령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의 도전에 대한 기독교의 뒤늦은 응전이랄 수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빚어진 인류사 최대의 비극이지만 어쨌든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독교 문명의 본격적인 반격은 18세기에 시작됐다. 아랍 세계가 대부분 기독교 문명인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물리적으로 압도적인 기독교의 도전에 대한 이슬람의 정신적 응전은 자기반성이었다. '자존심의 문명'인 이슬람은 수모의 원인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타락을 꼽았다. 그 타락상을 비판하며 경건한 삶을 주창하고 나온 수니파 종교지도자가 무하마드 알 와하브(Wahab)다. 코란에 따른 삶을 강조하며, 이에 따르지 않는 부패한 세력과 이교도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근본주의적 종교개혁이다.

와하브를 따르는 사람이 와하비(Wahabi), 그 가르침은 와하비즘(Wahabism)이다. 와하비즘의 중심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 이븐 사우드가 20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면서 와하비 종교권력과 연대했기에 와하비즘은 지금도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다. 알카에다는 와하비즘의 극단적 형태로 분류된다.

와하비들이 보기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기독교 문명의 도전이다. 최근 알카에다의 사우디 내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새로운 응전 전략으로 주목된다. 기독교(미국)와 친한, 부패한 사우디 왕가에 대한 도전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알카에다는 기독교 문명의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약한 고리를 붙잡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