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난장판 국회 사태가 남긴 최악의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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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해머·점거·격투기’ 국회사태가 어제야 끝났다. 민주당이 점거를 풀고 여야가 쟁점 법안을 2월로 미루었다. 국회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은 오래 갈 것이다. 그동안 여야 충돌이 많았지만 이번 사태는 이례적으로 충격적이다.

먼저 국회 권위가 최악으로 추락했다. 본회의장은 의회민주주의의 안방이다. 그곳을 민주당 의원들은 야전(野戰) 차림으로 12일간이나 점거했다. 역대로 날치기·몸싸움은 많이 있었지만 그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농성장·난민캠프가 된 것은 처음이다. 국회의 권위와 공권력으로 이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이런 일은 반복될 수 있다. 국회는 아주 나쁜 선례를 남겼다.

보좌관·당료의 문제도 심각하다. 과거에도 이들이 폭력에 가세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그들이 주력 부대가 되어 국회 시설을 점거하고 경위·방호원을 폭행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난장판이라도 국회는 ‘의원’의 무대였다. 그런데 이번엔 국회의 권위가 보좌관·당료의 발 아래로 떨어졌다. 앞으로 보좌관·당료의 집단행동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폭력의 극단적인 양태도 문제다.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가 주요 도구로 등장했다. 사태의 막판엔 민노당 대표의 격투기까지 등장했다.

이런 최악의 기록을 세우고도 국회가 남긴 것은 쟁점 법안의 연기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은 오바마 정부 출범 후로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미룰 거면 민주당은 과거 집권 때 왜 협정을 체결했으며,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왜 그렇게 외통위에서 무리하게 직권상정을 했는가. 정권과 한나라당은 금산분리·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는 법안들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며 숨 넘어갈 듯 속도전을 외쳤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야당의 완력에 밀려 2월로 미뤄놓았다. 그나마 미디어 관련법 6건은 시한조차 정하지 못했다. 일부는 ‘합의 처리’라는 조건인데 협의해서 안 되면 표결 처리하는 거지, 합의 처리라는 이상한 용어는 무엇인가. 바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한나라당, ‘질서 회복’ 공염불을 남발한 국회의장, 막가파식 물리력에 도취한 민주당 때문에 의회민주주의가 신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