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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3 이길 비밀병기는 Y세대 사로잡을 소형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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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22면

‘엔트리카(생애 첫 구입 자동차)=□□□한 소형차’.
2000년대 초반 시장은 현대ㆍ기아차에 이런 숙제를 줬다. 외환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자 엔트리카로 쏘나타 같은 중형차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소형차 시장은 타격을 받은 것이다. 트렌드 분석과 선행상품(컨셉트카)으로 소형차에 변화를 주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대,기아차 미래트렌드연구팀,선행상품기획팀

현대ㆍ기아차의 미래트렌드연구팀(이하 미래팀,사진)과 선행상품기획팀은 이런 배경으로 2003년 탄생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 있는 두 팀은 미래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첫 단추 역할을 한다. 회사 내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소속인 미래팀은 심리학ㆍ사회학ㆍ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의 석사급 젊은이 7명으로 구성됐다. 선행상품기획팀은 현대·기아차 상품전략총괄본부 소속으로 인력 구성이 베일에 싸여 있다.

1년에 3, 4개의 컨셉트카를 기획하지만 팀과 관련된 정보는 사내에서도 제한적인 사람에게만 공개된다. 선행상품기획팀 관계자는 “일본의 도요타나 미국의 포드 등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우리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컨셉트카를 만들어 왔다”며 “그들이 조직 자체를 비밀로 해 우리는 그런 게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좇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 소속은 다르지만 두 팀은 유기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 첫 작품은 ‘미국 Y세대 연구’다. Y세대란 77년에서 94년 사이에 태어난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전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와는 소비성향이 다른 것으로 분석돼 있다.

미래팀은 먼저 뉴저지ㆍLA에서 Y세대 73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 팀 양진수 과장은 “미국 Y세대 7300만 명의 자동차 수요는 2010년 437만 대를 넘어설 것”이라며 “일본 메이커가 미국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든 혼다 시빅, 도요타 사이언과 경쟁할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두 팀은 인터뷰 결과와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1년간의 작업 끝에 2006년 컨셉트카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들이 공략해야 할 대상은 몸에 꼭 맞는 애버크럼비 피치(Abercrombie & Fitch)나 케네스 콜(Kenneth Cole)을 즐겨 입고 피트니스 평생 회원권쯤은 갖고 있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그들은 블랙베리(e-메일이 되는 휴대전화)나 텍사스 홀뎀 게임을 위한 플레이스테이션 Z박스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겉모습을 중시하지만 가구는 이케아(IKEA·스웨덴 가구 브랜드)에서 사 직접 조립하는 등 합리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대상을 공략할 차는 ▶외관상으로 다른 차와 차별되면서도 가격이 비싸지 않고 ▶부품이나 액세서리를 다양하게 구입해 튜닝(개조)으로 개성을 살리는 ‘카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결론은 곧바로 자동차 모형을 만드는 현대차 디자인센터 선행디자인팀으로 넘겨졌다. 그 결실이 2007년 서울모터쇼에서 컨셉트카 부문 1위를 차지한 HND-3 벨로스터(Veloster.사진)다. 젊은이들이 소형차에 다시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차는 2인승 차인 쿠페의 날렵함을 살리는 동시에 해치백의 실용성을 가미했다. ‘속도를 다루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의 이 차는 5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역동성을 강조했다. 블루투스 휴대전화 수납대나 USB 포트를 통해 MP3를 들을 수 있도록 아이팟 전용 거치대를 설치하는 등 내부도 Y세대 구미에 맞게 설계했다. 현대차는 이 차를 조만간 미국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는 금융위기로 미국의 자동차 빅 3(포드ㆍ크라이슬러ㆍGM)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30대의 감성에 맞춘 소형차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미래팀의 배병찬 과장은 “팀 내에서는 100개의 아이디어가 검토되지만 실제 양산까지 이어진 차는 1개 정도에 그친다”며 “그만큼 압축적인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2008년 출시된 기아차 ‘소울’도 2003년 구상한 컨셉트카가 원조다.

미래 소비자의 감성을 좇는 미래팀의 평균 연령은 30세다. 사내에서 가장 젊다. 매주 한 번은 ‘타운 미팅(town meeting)’을 한다. 홍대 근처 등 젊은 감각이 생동하는 곳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두 팀의 2007년 화두는 중국, 2008년은 인도였다. 미국의 젊은 층에 이어 나라별 미래공략 전략도 세우고 있다. 미래팀의 막내인 황정애(28)씨는 지난해 인도를 직접 탐방하고 왔다.

소형차가 지배적인 인도의 공략 포인트는 준중형차다. 마침 지난해 이 팀은 ‘철학,미학의 흐름과 디자인의 변화’란 보고서를 내놨다. 연구결과로 나온 ‘빈틈을 보이는 의외적 디자인, 동아시아의 특성을 드러내는 미니멀리즘’을 활용할 생각이다.

미래팀 배 과장은 다른 과제로 ‘감성ㆍ여성ㆍ고령화’를 꼽았다. 2010년 이후에는 노인 운전자를 위해 ▶시야 확보 장치 ▶버튼이 큰 디자인 ▶도로면의 상태를 미리 보여 주는 LCD 화면 등을 갖춘 지능형 자동차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배 과장은 “휠을 돌릴 때 음악 소리가 난다든지, 차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감촉 등 가장 사소해 보이는 곳에서 공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감성형 자동차가 곧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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