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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정치Q] 盧대통령 - 김혁규씨 사이 3가지 특별한 게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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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과 찰떡이 된 것일까. 거기에는 신분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 김해 진영읍에 대한 고향정서, 그리고 수명의 중매쟁이가 숨어 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3월,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 당시 지사는 돌연 3박4일간 지리산 등지로 잠적한 적이 있다. 이회창 총재 측의 이강두 의원이 지사후보 경선에 출마하자 창심(昌心)이 이 의원을 민다고 의심해 무소속 출마를 시위한 것이다. 잠적에 동반했던 Y산업의 Y회장은 김 전 지사의 심경 토로를 이렇게 전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말 너무해. 내가 뉴욕에서 당당히 무역업을 했는데 걸핏하면 나더러 가방장사라 하고…. 아니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 내가 돈을 미국으로 빼낸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러면 애국자 아닌가."

노 대통령이 취임한 후 김 전 지사는 동병상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상고를 나온 대통령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민주당 경남도지부장 시절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서적 유대는 이때부터였다. Y회장의 기억. "김 전 지사는 종종 '노 대통령도 상고 출신이라 마음고생이 있겠다. 안타깝다. 대학(부산대 법대)을 나온 나에게도 가방장사라 비아냥대는데'라고 말하곤 했어요."

노 대통령과 김 전 지사는 고향정서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1939년 합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김해 진영읍으로 이사해 한얼고교에서 2년을 보냈다. 46년생인 노 대통령은 읍내서 10리 떨어진 봉하마을에 살면서 읍내 초등학교에 다녔다. 김 전 지사는 고교 2년 때 부산 동성고로 전학했다.

노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 가보면 소년 노무현의 의식 속에 '진영읍'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노무현 헝그리정신의 태반(胎盤)이 진영이다. 그곳에서 사춘기를 보낸 김 전 지사의 고향정서도 각별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발전을 아는 이들은 '3인의 중매쟁이'를 꼽는다. 김해상공회의소 회장인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밀양 출신으로 두 사람과 친하다. 그는 노 대통령 후원인 중 1인으로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에게 대선 전 5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인 그는 지난주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났다.

Y회장은 노 대통령의 진영중 선배이며 김 전 지사와는 부산대 입학동기다. 그는 창원에서 사업을 하면서 '도지사 김혁규'의 신세타령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고비마다 조언자로 남아있었다.

창녕이 고향인 김태랑(열린우리당) 전 의원은 2002년 천정배 의원에 앞서 당료 출신으로 맨 처음 노무현 지지를 선언했던 핵심 노무현파다. 그는 민주당 경남도지부장을 맡으면서 당시 김혁규 당시 지사와 가까워졌다.

한국정치 사상 교포 출신으로 국내에서 가장 출세한 정치인은 가발 수출로 큰 돈을 모은 박지원씨다. 그는 지금은 범죄자로 전락해 있지만 한때는 막강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또 하나의 뉴욕 거상(巨商) 김 전 지사는 만약 총리가 된다면 겉으로는 박씨의 출세기록을 깨는 것이다.

김 전 지사는 정서공유라는 터널을 통해 노 대통령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는 지금 '배신자''권력을 좇아간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자들의 함성을 듣고 있다. 노 대통령과 그는 집권 2기 최대의 모험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 원칙의 사나이라는 노 대통령이 유권자의 뜻을 저버리고 김 전 지사를 당겨왔다는 비원칙이 모험의 최대 장애가 되고 있다.

창원에서,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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