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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건이면 한국과 일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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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06면

대한항공이 독점 운영을 맡은 우즈베키스탄 나보이 공항. 4㎞ 길이 활주로를 최근 완공했고, 4개를 추가할 계획도 있다. 중앙아시아 허브의 꿈을 키우기 위한 작업이다.

지난 16일 늦은 저녁, 우즈베키스탄 대외경제투자무역부 샤브가트 툴리아가노프 차관은 루스탐 아지모프 제1부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 언론인의 나보이 경제특구 취재에 동행하라.” 다음날 오전 6시 그는 담당국장과 함께 타슈켄트 공항에 나타나 하루 종일 취재에 ‘수행’했다. 나보이주 주지사도 기자들을 보자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보이는 특별한 관심의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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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중부 내륙의 나보이 공항은 썰렁하다. 넓고 황량한 평지를 긴 활주로가 가로지른다. 공항은 작고 주변에 시설도 별로 없다. 그런 곳으로 8월 27일 대한항공 보잉 747 화물기가 착륙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야망이 숨쉬는 이곳에 들여놓은 한국의 첫걸음이다. 야망의 콘텐트는 나보이 공항 물류기지와 나보이 경제특구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12월 2일 ‘나보이에 경제특구를 건설한다’는 특별 명령을 발표했다. 나보이주가 기계·광업·농업이 가장 발달한 주라곤 하지만 느닷없다고 여겨질 만큼 전격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대통령 관심 사업’인 만큼 추진력은 강했다.

발표 일주일 만인 9일 우즈베키스탄 안바르 살리흐바예프 외교부 차관을 대표단으로 하는 대표단이 제주도의 ‘한·중앙아 포럼’에 와 특구 계획을 발표했다. 나보이주 주지사도 금융 부문에서 일하다 농업수산부 차관을 막 마친 ‘40세의 젊은 피’ 에르킨존 투르디모프로 바꿨다.

특구 사업의 골자는 나보이 공항 주변 500㏊ 부지에 30년 계획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하이테크·친환경·수출 사업이 들어오길 희망한다. 특구로 아시아 하이웨이인 E-40이 관통하고 유럽과 중국으로 뻗는 철도도 지난다. 특구 제품이 러시아·유럽·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외경제투자무역부 하시모프 물류국장은 “아프가니스탄과도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이란까지 진출할 수 있다”고 한다.

입주 기업은 10년간 관세를 면제받는다. 주로 수출용 원료에 적용되며 내수용은 50% 감세다. 법인세는 10만~300만 유로 투자 시 10년간 100%, 이후 5년은 50% 면세다. 300만 유로 이상은 15년 100%, 이후 50% 면세다. 내용은 아직 채워 가는 중이다. 조만간 특구운영위원회도 꾸려진다. 이 부분에서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역할을 단단히 기대한다.

툴리아가노프 차관은 “특구를 위해 러시아·싱가포르·터키·한국을 둘러봤다. 다 독특하고 특색 있게 운영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빠르게 진행하고 싶다. 한국의 경험 있는 회사가 특구 운영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5개 회사가 관심을 보이는데 한국에선 GSD(GS건설)와 산업단지관리공단이 도전장을 던졌다.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을 원하는 이유에 대해 견제민 우즈베키스탄 대사는 “카리모프 대통령은 같은 조건이면 한국과 일하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는 말로 설명했다. 아지모프 제1 부총리는 한국을 전담하다시피 한다. 독립 초기 대우를 통해 맺은 한국과의 인연도 작용한다.

툴리아가노프 차관은 “중앙아시아 유일의 자동차 공장이 한국 파트너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에 지어진 것을 늘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여긴다”고 했다. 92년 대우가 지은 공장은 GM-대우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는 GM우즈베키스탄 공장으로 운영된다.

견 대사는 또 “러시아·중국의 자본이 필요하지만 역사적·정치적 이유로 기피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GM우즈베키스탄이 여전히 대우의 마크를 쓰는 게 단면”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이유가 ‘한국이 무조건 좋아서’는 아니다. 계산이 깔려 있다. 최근 타슈켄트 주재 프랑스 대사는 견 대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한국국제협력단 소장이 대신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 대사는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제공하는 유·무상 공여를 알고 싶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관리들이 “우리를 위해 해 준 것이 뭐가 있나. 한국을 보라”고 해 급히 찾았다는 것이다.

견 대사는 “프랑스 대사가 놀랐다. 그리고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을 음으로 양으로 돕는다. 장사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보고를 했다”며 “한국의 대우즈베키스탄 공적개발원조(ODA) 협력, 직업훈련원·전자도서관 건설 등이 작용한다”고 했다. 또 “석유만 보고 오는 EU나 미국에는 자원을 잘 안 준다. 웬만한 것은 자기가 할 기술과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방면에 걸친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구 전략은 체력도 받쳐 준다. 우선 국제 금융위기가 우즈베키스탄은 비켜갔다. 주력 수출품인 면화 가격이 떨어진 정도다. 국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신음하지만 이 나라는 다르다. 최근 5년 동안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 이상이었다. 2008년 3분기까지 성장률은 9.4%. 공업 성장률은 12.4%. 외국인 직접 투자도 33.5% 늘었다. 수출은 158% 성장했다. 2009년 성장률 전망은 8.5% 이상이다.

또 경제개발 5개년 프로그램도 11개 운영 중이다. 화학·광물·건축자재·제약·자동차·비료·목화가공 분야 등이다. 초기엔 총 10억 달러가 투입됐다가 현재 20억 달러로 늘었고 5년 내 50억 달러로 확대된다.

특구가 카리모프 야망의 본체라면 나보이 공항은 ‘발’이다. 나보이 공항은 지난해 4㎞ 길이 활주로를 완공했다. 수준도 국제항공기구(ICAO)-2급으로 향상됐다. 같은 길이 활주로 4개도 계획 중이다. 인천공항의 활주로는 3.7㎞다. 긴 활주로엔 중앙아시아 허브에 대한 꿈이 깔려 있다.

하시모프 국장은 “나보이 공항을 활용하면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더 많은 물동량을 나를 수 있다”고 했다. 허브의 꿈을 간직한 나보이 공항은 대한항공이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비용도 받아가면서’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도 인연이 숨어 있다.

현지 관계자는 “우즈베키스탄이 독립 직후 어려웠을 때인 1996~98년 대한항공이 타슈켄트에 스톱-오버 하면서 연 4000만 달러의 외화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걸 고맙게 여겨 카리모프 대통령은 조양호 회장을 세 번이나 만났다. 전용기로 와 만나면서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담에 늦기도 했다.

나보이 공항을 대한항공이 맡게 된 배경도 ‘공짜’가 아니다. 한승수 총리가 지난 5월 타슈켄트를 방문할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광업진흥공사의 탐칼사이 중석광 탐사 양해각서(MOU) 체결 조건으로 대한항공의 나보이 공항 운영권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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