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년 잠 깨어난 일본] 6. 고이즈미 개혁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 가가와현 쇼도시마 올리브진흥 특구엔 농민이 없다. 농민이 놀리던 농지를 올리브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야마히세의 직원이 빌려 재배부터 가공까지 일체를 맡아서 한다.

군마현 오타 외국어교육 특구에선 일본어를 듣기 힘들다. 오타시청과 민간이 합작으로 만든 특구 학교에선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대부분을 외국인 교사가 가르친다.

도쿄 지요다구 커리어교육 특구에선 일본 최초로 '주식회사(도쿄리걸마인드)'가 대학을 세웠다. 이 회사는 또 내년에 법과대학원을 개설한다.

*** "기업가 정신 돕는 게 정치"

"농업.교육 등은 관(官)이 개입해 온 일종의 사회주의 경제 부문이었다. 여기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투자하는 것은 과거 일본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고이즈미 개혁은 바로 이 통제경제 부문을 시장경제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미야우치 요시다카 오릭스 회장.종합규제개혁회의 의장)

<그래픽 크게 보기>

2002년 12월에 마련한 규제개혁 특구가 드디어 뜨고 있다. 농업.교육.복지.물류.환경 특구 등 지금 전국 각지에서 움트는 규제개혁 특구가 324개다. '농업회사' '병원기업' '학교 영리법인' 등 성공 사례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지자체 간 특구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규제개혁 특구는 그동안 지자체와 민간 기업 등이 제안한 1700개의 규제개혁 방안 가운데 우선적으로 176개를 받아들여 시행한 결과 빛을 보았다.

경쟁 도입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67개 특수법인(공기업) 중 128개 기업에 대해 독립채산제를 도입했다. 국립대학도 법인화했다. 정부 돈줄에 기대 안주하던 공기업을 민간 기업과의 경쟁의 바다 속에 내던져 스스로 살아 남도록 한 것이다. 규제개혁이 성공작으로 평가되면서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서' '지방(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지방(지자체)에서'라는 기치 아래 추진해 온 고이즈미 개혁이 자신감을 찾았다.

그래서 'NATO(No Action Talk Only: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정권'이라는 비아냥에도 당당하게 맞선다. 가네코 가즈요시 행정.규제개혁 담당상은 최근 경제 회복세에 대해 "과거 정부는 국가사업 추진이라는 영양제 주사를 놓아 경기를 부양했지만 우리는 규제개혁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경기를 활성화시켰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고이즈미 개혁의 또 다른 작품은 금융 부실 해소다. 오랜 불황으로 2002년 3월 30조엔을 넘어선 은행의 부실 채권이 절반으로 줄었다. 다케나카 헤이조 금융.경제재정담당상은 "2004년 말이면 일본은 부실 채권 문제가 사실상 완전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규제.금융개혁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 의지다. 끊임없이 개혁 분위기를 조성해 민간 기업들이 따라오도록 만들었다. 최근 경기 회복세의 이면에도 고이즈미 내각이 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아 민간 부문에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게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다카하시 쓰스무 일본종합연구소 이사는 "고이즈미 개혁은 그 자체로선 미진하지만 민간이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9일 파나소닉센터를 찾은 고이즈미 총리도 최근 불티나게 팔리는 신3종 신기(神器=디지털TV.디지털카메라.DVD리코더)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도록 한 개혁의 성과라고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안 해도 기업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준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토록 하는 게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 특히 공공 부문 개혁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차갑다.

'전체 평가 3점(5점 만점), 규제개혁 3점, 연금개혁 2점, 재정개혁 2점, 우정개혁 1점, 도로공단 개혁 0점…'.

지난달 12일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국민회의' 소속 8개 단체(전경련과 유사한 게이단렌 포함)가 내린 자민당 공약에 대한 평가는 직설적이었다. 연금 등 고이즈미 개혁을 상징하는 과제에 대해 낙제점을 주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 지자체에 권한 대폭 이양

고이즈미 개혁은 2001년 6월에 내놓은 '골태(骨太:기본)방침 2001'로 상징된다. 금융.재정.행정.사회복지.지방분권 등 2차대전 이후 일본 경제의 틀인 '1940년 체제'를 확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9월에는 '개혁공정표'라는 구체적인 일정도 내놓았다.

하지만 고이즈미 내각의 공공개혁은 그 첫걸음부터 실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 발행하는 국채를 30조엔 이내에서 묶겠다'고 약속했으나 고이즈미 내각 첫 예산의 신규 발행 국채는 36조엔이었다. '개혁 총리'가 첫 작품부터 모양새를 구긴 것이다.

공공부문 개혁 중 특히 우정.도로공단.연금 개혁은 아직도 '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월 중 나올 '골태방침 2004'도 '골태방침 2001'과 대동소이하거나 구체적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개혁의 완료 시한을 총리 임기가 끝나는 2006년 이후로 미루는 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론가 시오다 우시오는 "우정.도로공단.연금 개혁 등 고이즈미 개혁의 혼마루(本丸.핵심)는 과거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그의 개혁 의지는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가 최근 칼럼에서 "고이즈미 개혁, 이제 빚 갚을 때가 됐다. 고이즈미, 결국 '보통 총리'가 되고 마는가"라고 태도를 바꿨다.

한마디로 고이즈미 개혁 중 민간 시장경제를 자유롭게 하거나 강하게 하는 (규제.금융 개혁) 등 '민간을 위한, 민간에 의한 개혁'은 성공으로의 길을 힘차게 걷기 시작했으나 튼튼한 작은 정부로의 '관(官)의, 관에 의한 개혁'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의 싹은 돋아나고 있다. 이를 키워나가는 일만 남아있을 뿐"임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다. 그 싹이 신 일본 경제라는 거목으로 커 나갈지, 아직 채워지지 않은 고이즈미 개혁의 나머지 반잔이 언제 채워질지 지켜볼 일이다.

도쿄.오사카.나고야=특별취재팀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양재찬.신혜경 전문기자, 이종태.김광기 기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6월 1일자 5면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공정표'에서 '20010'년은 '2010'년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