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벌>15. 장제스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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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타이베이(臺北)시내 금싸라기 땅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장제스(蔣介石)기념당은 성역(聖域)에서 벗어나 이제 시민들의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했다.

蔣씨 집안의 영화(榮華)와 조락(凋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때 아시아 최고의 가문으로 손꼽혔던 장제스 일가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남았던 손자 장샤오융(蔣孝勇)이 사망함으로써 가문전체에 드리운 암영(暗影)이 더욱 짙어졌다.

75년 사망한 장제스는 50여년에 걸쳐 중국대륙과 대만을 통치한 철완(鐵腕)의 정치가다.특히 국공내전에서의 참패로 대만으로 쫓겨온 이래 그는 병적이다시피 했던 반공(反共)이데올로기와 가차없는 정적(政敵)제거,계엄통치를 통해 절대권력을 쌓았다.

대만으로 쫓겨온 49년 이후 장제스의 머릿속은 대륙에 대한 꿈으로 가득찼고,그의 눈에 대만이란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전진기지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철저한 독재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활기찬 경제건설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륙회복을 위한 임시 기지를 건설한다는 차원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장제스가'실지회복의 꿈'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던 이상주의자였던데 비해 그의 아들이자 부친의 권력을 승계한 장징궈(蔣經國) 전총통은 현실주의자다.

그의 집권기간에 대만의 경제는 최정점에 올랐으며 30여년도 넘게 이어지던 계엄상황도 눈에 띄게 완화됐다.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장기집권이라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 장징궈는 경제건설에 주력하면서'대륙회복을 위한 임시 기지'로서가 아닌'대만 자체'를 개발해 갔다.

'대만화(臺灣化)'로 일컬어지는 이같은 정책으로 장징궈는 아직까지 대만인들로부터 가장 후한 점수를 받는 총통이 됐다.

이러한 蔣씨 집안의 영화는 88년 장징궈의 사망과 함께 끝없는 조락의 길로 접어든다.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은 남편이 사망한 뒤 줄곧 미국에 거주하면서 가문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다.그녀는 얼마전 1백세 생일을 맞아 다시 한차례 언론의 각광을 받기도 했으나 현재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고 있다.

蔣씨 일가의 몰락은 장제스 적손(嫡孫)들이 거의 모두 사망하면서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장징궈와 러시아인 장팡량(蔣方良)사이에서 태어난 샤오원(孝文)과 샤오우(孝武).샤오융(孝勇)은 각각 89년,91년,96년에 모두 사망했다.혈족

이라고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녀 샤오장(孝章)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아들 3형제중 蔣씨 집안을 제대로 이어나갈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샤오우는 싱가포르.일본의 대만대표부 대표를 역임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나 심부전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샤오융은 그동안 국민당 중앙위원을 역임하면서 할아버지 장제스와 부친 장징궈의 명예와 권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최근까지도 조부.부친의 유해를 대륙으로 이장하려 했으나 지병인 후두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했다.

장징궈는 중국 광시(廣西)성에 머무를 당시 간호사 출신의 비서였던 장야뤄(章亞若)와 관계해 현 대만 외교부장 장샤오옌(章孝嚴)과 샤오쯔(孝滋.96년 사망) 쌍둥이 아들을 뒀다.이들 쌍둥이 형제는 그러나 장징궈와 부자의 연을 맺지 못했다.장징궈는 생전에 이들을 자신의 소생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한번도 만나주지 않았다.장샤오옌은 최근 자신이 부친의 성(姓)으로 개성(改姓)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바 있다.

장징궈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졌던 장웨이궈(蔣緯國)는 최근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장제스의 소생이 아니고 국민당 원로 다이지타오(戴季陶)의 아들이었다고 밝힘으로써 충격을 줬다.그의 발언은 스러져 가는 蔣씨 일가에 또 한번의 좌절을 준 셈이다.

절대권력자 장제스 집안의 몰락은 거센'대만화 추세'와 관계가 있다.

리덩후이(李登輝) 현 총통으로 대표되는 대만세의 압도적 우위로 인해 대륙계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蔣씨 일가는 쇠잔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蔣씨 집안의 몰락은 그를 따라 49년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겨주기도 한다. 〈유광종 기자〉

<사진설명>

대만으로 옮겨 온 장제스와 쑹메이링이 지난 50년 3월1일 총통직권을 계속 행사할 것이라고 선포한 뒤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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