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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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준우가 국제전화를 통하여 우풍에게 말한대로 편지가 또 한통 날아왔다.지난번 편지에서 소개하지 않았던 폼페이 유적에 대한 인상들과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베티의 집에서 거대한 자신의 남근 무게를 저울로 달고 있는 프리아푸스 상을 구경하고 나와 황금 큐피드의 집,큰 샘의 집들을 지나 비극 시인의 집에 이르렀다.

카베 카넴(CAVE CANEM:개 조심).

이런 문구와 함께 목끈이 쇠사슬이 달린 맹견 한 마리가 검은 타일들로 모자이크되어 있는 현관 입구 마루를 들어서는데,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두 귀를 쫑긋 세운 그 맹견이 갈기를 날리며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아 감히 개를 밟고 지

나가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서 간다.눈동자마저 어쩌면 그렇게 펄펄 살아 있는 것처럼 모자이크해 놓았는지.일리아드의 장면들이 벽에 많이 그려져 있다 하여 비극 시인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모양이다.비극 시인의 집 현관에 개 조심이라

는 문구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개 조심.

나에게 수학 과외를 가르친 선생의 집 대문에도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그런데 그것은 집 주인이 정식으로 써놓은 것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붉은 매직펜으로 낙서를 해놓은 것이었다.'개'자 뒤에 까만 사인펜 같은 것으로 새끼라는 글

자가 휘갈겨져 있었는데,그 글자는 다른 아이들이 또 장난삼아 써놓은 모양이었다.

개새끼 조심.

아니나다를까 내가 대문 앞에서 집안을 들여다보려 기웃거리자,

“컹 컹 크응.”

우렁차게 짖어대는 개소리가 들려왔다.집안에 사나운 개가 있음에 틀림없었다.먼저 개부터 처치해야겠군.처치한다고 해서 죽이려는 생각까지는 없었고,내가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나올 때까지 잠들어 있도록만 할 작정이었다.그래서 정육점에서 쇠

고기 한 근을 사서 그 안에다 수면제를 열 알 정도 박아넣고는 새벽 두 시쯤 과외 선생 집으로 가 대문 너머로 개집을 겨냥하여 쇠고기를 던져넣었다.처음에는 크게 짖어대던 개가 쇠고기를 던져주자 잠잠해졌다.

담장 위로 올라가 살펴보니 개는 이미 개집 앞에서 너부러져 있었다.담장을 넘어간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넓은 정원의 불빛을 피해가며 집 현관으로 다가갔다.현관 문은 예상했던대로 굳게 잠겨 있었다.나는 유리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으므로 유리칼을 꺼내어 잠금장치가 있는 부분을 베려고 하였다.그런데 바로 그때,집안 가득히 뻐꾸기 울음을 닮은 초인종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띠리띠리 뻐뻐뻐억국.

<글=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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