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넘는 힘든 훈련 끝에 말 타고 활쏘고 칼을 휘두르는 역할에 익숙해진 채시라에게서는 여걸의 풍모가 느껴졌다.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진 것만 여러 차례. 하지만 ‘다시 하기 어려운 배역’이라는 생각에 힘을 냈다고 했다. [KBS 제공]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지난해 둘째를 출산한 후 컴백작으로 ‘천추태후’를 택해 주목을 끌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했다. “북벌에 앞장서고 전쟁 선봉에 서는 등 여성이 진취적인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잖아요. 게다가 원없이 칼 쓰고 활도 쏠 수 있고. 한번은 해보고 싶은 배역이었어요.”
촬영장에서 그녀는 ‘채장군’이라 불린다. 독하게 전투신을 소화해내 스태프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작품을 위해 그는 두 달간 액션 스쿨에서 수업받고 승마 훈련도 하는 등 강훈련을 했다. 물론 녹록지 않았다. 낙마 사고라는 호된 신고식도 치렀다. 지난 7월 포천 승마 훈련장에서 말을 타다 떨어져 전치 8주의 엉덩이뼈 부상을 입은 것. “말에서 떨어지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엉덩이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말은 안 탈 수 없고. 지금은 말 타는 데 선수 됐어요.”
하지만 10kg에 가까운 갑옷을 입고 말을 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극중 천추태후는 태후라는 운명 때문에 평범한 여자의 행복을 갖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사실 태후도 여자로서의 삶이 싫어서 누리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요. 부강한 나라, 대제국이라는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거죠. 사랑하는 남편도, 자신의 오빠도, 그리고 아들까지도 포기한 비운의 여인이죠. 지도자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같은 여자로서는 태후를 기구한 운명의 여자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곁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신창석 PD는 “1~2회만 보면 ‘여자를 앞세운 남성 사극’이라고 예단할 수도 있겠지만, ‘천추태후’의 묘미는 이리저리 꼬여버린 세 남매의 기구한 운명, 치열한 사랑이 기본이고, ‘채장군’덕에 극적인 요소가 잘 구현되고 있다”고 거들었다.
‘천추태후’의 여성성은 연인 김치양(김석훈)과의 관계에서 짧지만 깊게 발현된다. 신라를 재건하기 위해 고려에 잠입한 김치양은 적대 관계인 태후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김치양과 만나면서 태후는 비로소 여인이 되죠. 사랑의 설렘, 뜨거운 열정 같은, 태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들이 김치양을 만나면서 가능해지죠. 하지만 김치양은 거란과의 2차 전쟁에서 태후의 곁을 떠나요. 그런 감정 변화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지금도 고민 중이네요.”
이번 천추태후 역은 2005년 채시라가 맡았던 드라마 해신의 ‘자미부인’과도 비교된다. 해상왕 장보고와 겨루며 상권을 장악한 여걸이라는 점에서다. 당시 채시라는 선 굵은 여걸 연기로 호평받았다. “두 사람은 스케일이 다른 인물이에요. 자미부인이 자신의 부와 명예에만 집착한다면, 천추태후는 고려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대의를 중시하는 사람이고 태후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엄마로서 감수성이 살아있는 캐릭터라 훨씬 매력적이죠.”
갓 돌이 지난 둘째아이를 두고 단양까지 와서 칼을 휘둘러야 하는 탤런트 엄마의 마음이 편하기만 할 리는 없다. 남편과 딸, 아들이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의 당연한 마음. 채시라는 “작품 결정 때부터 남편 김태욱씨가 많이 격려를 하고 지원해준다. 아이들도 잘 참아 준다”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단양(충북)=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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