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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속의홍콩>中. 중국출신을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홍콩섬 센트럴(中環)의 쉐창(雪廠)가에 위치한 사보이클럽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대륙출신의 중국 전문직업인들이 몰려든다.클럽하우스 옆엔'대륙 전문직종인들의 클럽(Mainland Professionals' Club)'이란 작은 팻말이

붙어있을 정도.

“어느 나라에서 오셨지요.”

처음 이 클럽에 발을 디딘 중국인들이 기존 클럽멤버들로부터 받는 첫 질문이다.자신들도 중국인이면서 이렇게 묻는 이유는 멤버들의 배경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매주 약 20여명 가량이 모이는 이들 멤버의 대부분이 미국.캐나다.영국등 각지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유학파들이다.대륙에서 이름난 대학을 나온뒤 다시 석.박사 코스의 유학을 다녀온터라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

는 것이다.

이같은 홍콩내 대륙출신 전문직종인들의 모임은 지난 몇년전부터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현재 홍콩에 진출한 대륙인들은 크게 세부류로 나뉜다.

첫번째가 중신태부(中信泰富)그룹 회장인 룽즈젠(榮智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중국 고위관료들의 2세인 태자당(太子黨).둘째,노동력 하나만 믿고 홍콩의 공사판을 누비는 빈곤계층의 신이민(新移民)집단.세번째가 대륙출신 전문직종 종사자들

인 것이다.

이들의 홍콩내 삶은 서로 다른 배경만큼이나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태자당은 대륙내 부모의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榮회장 같이 대성공,35억위안(약 3천5백억원)에 달하는 재산으로 중국은 물론 홍콩에서도 존경을 받는가 하면 때론 부정에 가담,수장사방(首長四方)그룹 회장이었던 저우베이팡(周北方)처럼

중국으로 소환돼 사형선고를 받기도 한다.한마디로 극과 극을 달린다.

반면 두평반 남짓한 공간에 온가족이 뒤섞여 살며 하루하루의 노동에 생계를 거는 많은 신이민은 홍콩경제와 치안 모두에 골칫거리인 존재.

그러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태자당이나 신이민과 또 다른 궤도에서 홍콩사회에 대한 커다란 영향력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외국유학에서 다져진 유창한 영어와 중국에 관한한 누구보다 뛰어난 이해를 무기로 재계.학계.언

론계.법조계등 이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중 현재 외환딜러나 일반회사의 회계등 높지도 낮지도 않은 직책에 진출한 숫자는 대략 2천여명.학계진출 속도는 더욱 빠르다.89년 홍콩의 교육개혁 이후 대학이 2개에서 7개로 늘었다.언론계 또한 대륙인들의 금역(禁域)은 아니다.

홍콩 최고의 중국어신문 명보(明報)의 주필인 웨이청쓰(魏承思)는 미국에서 초빙돼온 대륙인 출신이다.중국 쓰촨(四川)성 출신으로 영국유학을 마친 왕송(王松)은 현재 문회보(文匯報)에서 일하고 있다.

이처럼 대륙출신 전문인들의 홍콩진출이 늘고 있는 것은 상호 필요에 기인한다.코앞에 닥친 반환에 대처하기 위해 홍콩의 각 분야가 중국통을 찾기 때문이다.

특히 미로(迷路)처럼 얽힌 대륙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륙출신 법률가가 필수적.유학파 대륙출신의 변호사는 한달에 3만~10만 홍콩달러의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홍콩인들의 시각은 부정적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홍콩인들 역시 대륙인들의 눈에 천박하고 돈밖에 몰라 문화의 향기가 없는 메마른 존재로 비친다.

“우리는 홍콩이란 한대접 물에 떨어진 한방울 기름같은 존재들이지요.”

후베이(湖北)성 출신으로 은행에서 일하는 덩티순(鄧體順)의 말에선 융화되지 못하는 대륙인과 홍콩인들의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까다롭기로 유명한 홍콩이민절차를 밟고 있는 중국인 모자(母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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