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포커스>자동차업계 벼랑끝 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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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내 6개 자동차업체의 회장.사장단이 한꺼번에 모여 자기 회사는 물론 상대방 회사의 공장까지 단체로 시찰하는 자리가 오는 24일 마련될 예정이다.“첨단시설과 기술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꺼리던 공장설비를 경쟁업체 최고경영

진에게 내보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모임 참석 예정자도 회장단중에서 기아 한승준(韓丞濬)부회장.대우 김태구(金泰球)회장.현대정공 유기철(柳基喆)부회장,사장단으론 현대 박병재(朴炳載).대우 양재신(梁在信).기아 김영귀(金永貴)

.아시아 김영석(金榮石).현대정공 박정인(朴正仁)사장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업계 수뇌부들이 망라돼 눈길을 끈다.

10월 승용차시장 진출을 앞둔 쌍용은 김석준(金錫俊)그룹회장이 이종규(李鍾奎)자동차사장까지 대동하고 참석할 예정이다.모임을 주관한 자동차공업협회는 일단 이 모임이“정세영(鄭世永)회장의 협회장 취임에 따른 친목 모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진들이 단순히 친목 때문에 모일 만큼 업계가 여유있는 실정은 아니다.

각사의 공장 야적장은 물건이 안팔려 재고가 가득 찼고 연이어 나오는 차를 쌓아둘 공간이 모자랄 정도다.

경쟁이 부쩍 치열해져 서로 자기 '파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수출도 선진국의 견제 때문에 만족스러울 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다.외제차의 공세는 이제 탐색단계를 지나 내수시장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는 형국이다.

최근 몇개 회사는 할부판매 금리를 인하하면서 출혈경쟁에 나선 것도 이런 난국과 무관치 않다.이제 겨우 3월인데 무이자할부판매의 악몽(惡夢)까지 되살아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아는 회장.사장단들의 모임인 만큼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현 상황에 대한 탈출구가 필요하고 서로 자제하는 가운데 자기 몫을 찾아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면 해법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나아가 해외업체들과의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내업체들간의 전략적 제휴나 상호협력관계를 한단계 높이는 것도 차제에 논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장.사장단의'벼랑끝 포옹'에서 어떤 비책이 나올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박영수 경제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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