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바마 비선라인 찾는 건 의미도 효과도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은 아직 한반도 문제의 리뷰를 마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한국 정부는 성급한 추측보다는 오바마의 논평팀에 우리 입장을 자꾸 홍보하고 이해를 촉진하는 게 최선입니다. 또 한·미 관계, 북·미 관계, 남북 관계 이 세 가지 측면이 균형있게 잘 풀려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김동석(사진) 미국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이 한국을 찾았다. 김 소장은 1992년 이래 15년 넘게 미주 한인들의 정치 참여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의 선거운동 전 과정을 지켜보며 ‘오바마 권력’의 실체에 다가간 몇 안 되는 한인의 한 명이다. 17일 국회에서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의원들에게 ‘미국 의회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란 주제로 강연하기에 앞서 16일 본사를 찾은 김 소장을 만났다.

-북한 문제는 오바마의 정책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바마에게 경제가 최우선 과제이긴 하지만 북한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리처드 루거나 짐 리치 같은 공화당 출신 외교 전문가를 대북 특사로 보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오바마에게 더 얻어내 볼 심산으로 강경전술을 재현한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엔 북한이 강경하게 나와도 미국 시민사회가 ‘부시가 북한을 몰아붙인 데 따른 반작용’이라며 이해해 준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대화하려는 오바마에게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미국 시민들의 반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떻게 보나.

“오바마의 주요 지지기반인 노동계층의 반발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재협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결국은 통과될 것이다. 다만 통과에 소요될 시간을 최소화하려면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적 비중이 급성장한 한인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미 외교에 한인들의 비중이 커졌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오바마는 미국에서 소외됐던 계층들을 끌어들여 당선했다. 여기엔 200만 한인도 들어간다. 자연히 오바마는 한·미 관계도 한인들을 중심으로 접근할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는 올 2월 12일 “한·미 관계의 기본은 200만이 넘는 한국계 미국 시민과 한국에 사는 10만 미국 시민”이라고 ‘정견 발표 문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입장을 정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미국은 권력이 바뀌면 7∼10개월은 리뷰 기간이 필요하다. 일단 정책기조를 확정하면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바로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는 오바마 측에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시켜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일부 한국 정치인들처럼 ‘오바마와 통해 보겠다’라며 비선 라인을 찾는 것은 의미도, 효과도 없다. 오바마는 비선이 없는 사람이다. 대신 한국은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핵심 인물을 꾸준히 공략해야 한다. 2년 뒤 핵심 인물이 될 사람들도 지금부터 챙겨야 한다. 오바마 측에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통로로 세미나나 포럼을 자주 열어야 할 것이다.”

-미국 사회에 공론으로 우리의 입장이 잘 전달되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의 국익이 미국의 국익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이해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엔 한인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여름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 표기를 ‘분쟁지역’으로 변경하자 한인들이 미국 의원들에게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한국계 미국인의 반발만 살 조치’라고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설득해 원상복귀를 끌어낸 게 좋은 사례다.”

-그 밖에 한국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세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 정부는 재미 한인들이 미국 선거에 빠짐없이 투표하고, 공직에 출마하도록 북돋워줘야 한다. 한인들의 정치력이 커질수록 한국의 대미 외교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로 정부는 한국 내 외국인, 특히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 한국의 외국인 대우가 열악하면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자연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정부와 의회에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전문 싱크탱크(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제들은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일본은 4년 전부터 오바마를 눈여겨보고 공을 들여왔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지금 일본은 일하기가 아주 수월하다.”

글=강찬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