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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 하고 눈치 보다 ‘헛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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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1년 전에 한 전망을 가지고 틀렸다고 비난하면 어쩌라는 겁니까?”

보고서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연구소들 발표 전에 치열한 첩보전 … 주가 전망은 ‘동전 던지기’와 비슷

한 애널리스트의 항변이다. 그의 말 속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전망은 원래 틀릴 수밖에 없다’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나’ ‘우리 전망이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 적 없다’ 또는 ‘배 째라’ 등등. 매년 가을이 되면, 전문가들은 내년을 전망한다. ‘전망의 계절’은 겨울로 갈수록 농익는다.

내로라하는 경제 두뇌들이 모인 집단에선, 저마다 집단 지성과 고급 정보와 노하우와 견해를 버무려 미래를 예측한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거의 모두 틀린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전망을 제대로 해서 화제가 됐다는 제도권 경제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왜 틀릴까? 매번 틀린 전망을 반복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답안을 찾기 위해선 장기 경제·주가 전망 리포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알 필요가 있다. 국내 최대 민간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예를 보자. SERI의 경우 지난 10월 15일 ‘2009년 세계경제 및 국내경제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SERI 측에 따르면 경제전망 보고서 작업은 보통 8월부터 시작해 대략 두 달 정도 걸린다.

황인성 SERI 수석연구원은 “본격적인 작업은 한 달 정도 소요되는데, 기획단계부터 따지면 2개월 남짓 걸린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발표시점 3~4일 전에 최종 마무리된다. 이런 프로세스는 국책기관이나 민간경제연구소나 유사하다. 10~11월에 발표되는 1차 보고서는 대부분 8~9월에 만들어지고, 이후 1~2개월 사이에 변화된 변수를 대입해 수정치를 내는 게 경제전망 보고서의 일반적인 절차다.

보고서가 작성된다고, 그냥 발표하는 것은 아니다. “전망 작업보다 훨씬 치열한 시간(모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이 기다린다. 전직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대략 계산을 해서 전망치가 나오면 연구원과 각 실장, 경영진이 모여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되죠. 제일 먼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한국은행,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자료를 참조합니다(올해는 국책기관 발표가 더 늦었다). 이때 전망치가 정부기관과 너무 동떨어지면 고민이 시작되죠. 일반적으로 정부 숫자가 더 높게 나오는데, 그 갭을 어떻게 조정할지 토론을 거쳐 ‘적당히 이 정도로 하지’라고 결론이 납니다.”

객관적 분석 외에 소위 ‘정치적인 마사지(어떤 의도나 개입에 의해 전망치를 인위적으로 고치는 것)’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 연구원은 “경쟁 연구소와의 눈치보기도 있다”고 말했다.

“경쟁 민간경제연구소의 전망치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 때문에 발표 시점이 되면 경쟁 연구소들이 언제 발표하는지, 얼마를 발표하는지에 대한 첩보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때론 서로 다른 기관에 있는 연구원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죠. 7~8년 전만 해도 정부에 보다 우호적인 연구소라면 경쟁 연구소보다는 0.1% 정도라도 높게 발표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에 밉보이면 안 되니까….”(우연인지 모르지만 올해 LG경제연구소는 지난 10월 14일, 삼성경제연구소는 다음 날인 15일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전망치가 나오면 여러 요인에 의해 마사지를 하나’라는 질문에 “올해는 우리가 제일 먼저 발표했다. 전망이 미칠 파장을 감안해 숫자를 고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주로 거시경제실에서 다루지만, 연구소 내에 경제 상황을 보는 많은 시각 차가 있기 때문에 다른 실의 의견을 듣거나 경영자 의견을 반영하는 수준에서 조정은 있을 수 있을 뿐 정부나 경쟁사 눈치를 보는 등 다른 성격의 마사지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직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마사지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것이 꼭 정부 눈치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파장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전망치를 발표하면 기관의 신뢰와 직결되는데 함부로 숫자를 조작하거나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도 “국책기관은 물론이고 민간연구소가 더욱 충분한 자료와 근거와 식견을 갖고, 편향이나 외부의 영향 없이 제대로 된 전망치를 발표해야 한다는 지적엔 100% 동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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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경제를 전망하는 데, 정치적 입김이 여전히 작용하는지에 대해 현직 연구원은 대부분 “이제는 달라졌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왜 계속 틀리는가? 이에 대해 KDI 출신 한 대학교수는 “예측 능력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려면,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에 복잡한 경제수치와 변수를 넣어서 돌립니다. 이때 철 지난 자료나 잘못된 통계가 들어가면 오류가 나겠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국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3개월 전에 발표한 IMF나 세계은행 수치를 넣으면 현 상황을 반영할 수 없죠. 또 전망하는 시점이나 전망 기관의 편향도 오류를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올해는 특히 전망치 발표 시점을 고민한 곳이 많았다고 한다. 세계 경제상황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면서 경제연구소들이 어느 때보다 전망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KDI가 민간연구소보다 한 달 가까이 늦은 지난 11월 12일 전망치(경제성장률 3.3% 예측)를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KDI 관계자는 “SERI와 LG가 10월에 3.6%를 냈는데, 연구원 내에서는 발표 수치를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2% 얘기가 나오고,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경제 전망치를 대폭 하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 발표시점을 늦추고, 민간보다 오히려 낮게 전망치를 발표한 요인”이라고 밝혔다(KDI 발표 이후 민간경제연구소도 줄줄이 경제성장률 하향 수정치를 내놨다).

이틀 만에 전망치 바꾸기

전망 보고서를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보고서를 쓴 작성자조차 전망 보고서와는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경제전망에 대해 “정부의 선제 대응이 잘 먹힌다 해도 전년 대비 2% 이상 성장을 장담하기 어렵고, 마이너스 성장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제연구소는 지난 10월 말 2009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을 3% 초반, 하반기를 4% 중후반으로 전망했다가 12월 초 3.1%로 하향 수정했다. 이는 싱크탱크의 수장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각 연구소는 불과 한두 달 전에 공식 발표한 전망을 일제히 바꾸고 있다. 일부는 공식 문서로, 일부는 입으로 바꾼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최근 한 포럼에 참석해 “2009년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2.4%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기존 전망치보다 1.4%나 내린 수치다. 김 원장뿐 아니다. 3.6%를 제시했던 LG경제연구원 김주형 원장은 같은 날 “내년 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고,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 원장(기존 3.5%)은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2%대, 심지어 그 이하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결같이 “생각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일주일 전, 한 달 전엔 지금 상황을 예상 못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한 경제전문가는 “강만수 장관,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대를 언급하고, 11월 말과 12월 초 외국 기관들이 일제히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것을 따라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망 수치 인위적 조정도

경제연구소의 거시경제 전망도 신뢰를 잃었지만, 증권사의 연간 주가 전망은 정도가 심하다. 이와 반대로 투자하면 돈을 번다고 할 만큼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망이 나오는 구조를 보면 ‘맞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얘기에 공감하게 된다. 종합주가지수 산출은 대단히 복잡하다.

유가, 금리, 과거 주가지수, 정부 정책, 경기 상황, 기업 이익 총량, 실적, 산업별 기여도 등 숱한 지수가 합산된다. 산업별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실적 조정치를 전망하는데, 이를 위해선 증권사 이코노미스트가 환율, 유가 등 거시경제 전망 자료를 내야 한다. 환율·유가 전망이 틀리면, 기업 실적 조정치가 틀리고, 엉뚱한 전망치가 나오게 된다.

다른 나라의 지수나 경제상황도 반영돼야 한다. 한 달 정도 이런 절차를 거쳐 11월 중순~12월 초 연간 전망을 발표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말 국내 증권사들이 낸 올해 주가 전망이 1800~2500대다. 우선 애널리스트들의 변명부터 들어보자. 유명 애널리스트인 K씨의 얘기다.

황당했던 2008년 경제 예측

“내년이면 주가가 3000포인트 정도를 돌파할 수 있을 것”
- 이명박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2007년 12월 15일)

“원-달러 환율이 2008년 말 880원대로 떨어질 것”
- 모건스탠리(2007년 10월 모건스탠리 보고서)

“미국 서브프라임은 단기적 위축 요인일 뿐, 내년 경제성장률 5.9% 전망”
- 서울증권(현 유진증권) K 이코노미스트(2007년 11월 13일)

“내년 한국 경제는 본격적인 호황 국면에 진입할 것 …적정 코스피 지수는 2460”
- 현대증권 H 연구위원(2007년 11월 14일)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 발생할 가능성, ‘높다 10.1%’”
- KDI 경제 전문가 268명 설문조사(2007년 11월 26일)

“내년 140억 달러의 무역흑자 기록할 것으로 전망” - 한국무역협회
“실수요자 위주로 매수세가 이어지며 부동산 시장 상승할 것”
- 국민은행 12월 보고서

“애널리스트들은 될 수 있으면 낙관적으로 전망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고객인 기업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속속들이 분석해도 기업 내부 사람보다 잘 알 수는 없다. 애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은 기업 내부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게 논리적인지, 합당한지 판단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업과의 관계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최선을 다해 전망해도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고 그래서 맞히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추세라는 것이 만들어지지만 사실 그때그때 왔다 갔다 하는 거다. 예상 측정에 들어가는 수많은 지표 중 유가 하나만 해도 그에 따른 전망이 얼마나 다양한데 그걸 기반으로 가정을 하면 누가 맞히겠나.”

그는 전망의 고충과 한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물론 환율 변동성을 무시했다든지 하는 테크니컬한 것에 대한 오류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스포츠 토토’도 틀리고, 일기예보도 틀리고 미래 예측은 원래 다 틀린다.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기업 실적을 잘 맞힌다. 그 사람들 데려와 한국 기업 실적 맞히라면 잘 못한다. 대표적인 게 환율이다. 올해 기업 실적 전망치가 확 달라진 이유가 환율 때문이다. 미국은 기축통화니까 영향이 적다. 또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고 개방화가 진전된 나라일수록 해외 경제 변화에 바로 영향을 받는다. 즉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라서 전망을 맞히기 어려운 환경이다. 뭐 그것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비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는 또 “전망치 범위가 너무 넓다는 비판이 있지만, 사실 실제 시장의 변동성도 생각보다 크다”며 “1년 전에 왜 예측 못했느냐고 하면 황당하다”고도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장기적 예측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개입된다는 것이 문제다. 차트분석가인 L씨는 “전망이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애널리스트는 하반기부터는 올라간다는 식으로 전망한다. 장이 빠진다고 전망하면, 시장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올해의 경우 서브프라임 영향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애써 영향을 간과하고 시장을 좋게 전망했다. 국내만 보면, 작년까지는 기업 분석 결과가 긍정적이었다. 그 추세가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변수 추정치가 다 틀렸다. 환율만 보더라도 800까지 내려간다는 환율 전망을 보고 주가지수를 예측했으니 그게 맞겠나?”

L씨는 “기술적 한계도 있고, 프로그램과 사람의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마다 사이클 변수가 100개는 되는데, 그중 몇 개만 틀려도 결과는 뻔하다. 그래서 최악, 보편적, 긍정적 시나리오 만들어 놓고 내부에서 의논한 다음 적당한 선에서 발표한다. 주가 변곡점은 귀신도 모른다. 그래서 보통 긍정적인 게 나간다”고 덧붙였다.

차라리 전망을 안 하는 게 낫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중견 애널리스트인 P씨는 “세계적인 기관인 IMF도 전망을 계속 바꾸는데, 일개 한국 증권사 전망이 틀린다고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다”면서도 증권사가 왜 틀린 전망을 내는지에 대한 힌트를 줬다.

“솔직히 외압은 분명히 있다. 작년에 동양제철화학이 많이 올랐는데 그 이유가 기업 실적보다도 미래에셋 주력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기관에서 손을 쓰면 애널리스트들이 꺾지 못한다. 또 법인 담당 브로커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같은 사람들 접대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최근 주가가 한창 떨어졌을 때 한 증권사에서 B건설사 보고서를 비관적으로 써서 ‘셀’ 전망을 냈다. 하루 내내 주가가 엄청 고꾸라지고 다른 주가까지 움직여서 시장이 많이 죽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국내 모든 기관이 이 애널리스트에게 오퍼를 안 줬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이 부당한 증권거래가 있었는지 가족, 친척까지 조사했다.”

애널리스트가 스스로 판단해 목표주가를 정하지만 그만큼 외부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구조적으로 증권사는 투신사를 고객으로 장사한다. 기관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기관이 안 좋게 쓰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다”는 증언은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시장이 죽으면 애널리스트도 죽는다’는 인식도 문제다. 한 애널리스트는 “너무 비싸다 싶은 종목도 팔라고 할 수가 없다”며 “윤리상으로는 분명히 틀린 일이지만, 그게 관행이고, 담당하는 산업이 잘나가면 애널리스트 몸값도 뛰게 마련”이라고 전했다.
그러면 왜 귀신도 모른다는 전망을, 그것도 매번 틀린 전망을 반복적으로 내는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의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서”라면서도 “어차피 적정 종합주가지수나 목표주가를 맞히는 것은 거의 동전 던지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틀린 전망은 목마른 투자자에게 소금물을 마시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경제를 전망하고, 주가를 예측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경제 전문가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들만의 고충도 있다. 경제전망의 어려움에 대해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전망이라는 것이 단기간의 것이 아니라, 1년 가까이 내다봐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 상황이 너무 안 좋아도 내년 기초여건이 좋아질 것으로 예측되는데, 나빠진다고 보고서를 내기는 어렵지 않나? 특히 현재와 차이가 많은 전망을 낼 때 언론 등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설명을 하면 공자님 말씀으로 듣는다. 우리도 시류에 따라가면 편한데, 그렇다면 전망의 의미는 없어지게 된다. 그런 고충이 많다.”

전망이 결과적으로 틀렸을 경우 받는 지적에 대해선 “올해의 경우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상황이 급변했는데, 충분한 검토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엇갈린 전망이 됐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을 많이 하고, 지적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전망이 크게 틀렸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전망을 내놓는 것은 문제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개선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기업이나 개인투자자가 경제 전문가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런 노력일 것이다. 경제의 불확실성만 탓할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까지 예보해 줄 수 있는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니면, 차라리 전망 작업에서 손을 떼는 것이 공익을 위해 좋을지 모른다.

인터뷰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

“전망치 참고만 할 뿐 맹신 말아야”

지난 12월 8일 한 보고서가 증권가에서 화제가 됐다. 제목은 ‘2009년 기업 실적과 관련된 논점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실제 주가에 후행한다”고 꼬집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뒷북 전망’에 대한 반성문이다. 그를 만나 보고서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 보고서 내용이 ‘애널리스트의 자기반성’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전망이 틀린 것에 대한 반성이 맞나?
“애널리스트의 전망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을 투자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상이 자꾸 틀리는 것에 대해 반성도 해야겠지만 반성한다고 잘 맞히겠는가. 투자자는 전문가의 정보를 맹신하기보다 ‘예측의 한계’를 알고 의사결정에 활용해야 한다.”

-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전망치와 실제가 5% 이내 오차를 보인 것은 2년에 불과했다. 왜 전망이 자꾸 틀리나?
“아무리 전문가라도 인지적 오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과신의 오류, 편견의 오류, 현재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오류를 안고 있다.”

- 쉽게 설명해 달라.
“자기 과신은 애널리스트 스스로 지나치게 믿는 데서 생긴다. 편견의 오류는 지금 아는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또 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조스’가 개봉하고 나서 미국 해안가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하더라. 사람들은 실제 조스가 나타날 확률은 매우 낮은데도 영화에서 본 현상이 계속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분석 프로그램(tool)에 문제가 있다고도 하는데?
“아무리 정교한 툴이라도 과거의 추세를 분석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미래를 맞히는 데는 별수 없다. 주식은 정말 별의별 것에 영향을 다 받는다. 최종 결과치보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근거를 눈여겨봐야 한다. 전망 자체에 이미 많은 가정이 들어가 있다. 과거와 현재는 확실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이 세 부분은 단절돼 있다.”

- 아무리 해도 못 맞힐 것이라면 뭣 하러 전망을 하나?
“그렇다고 전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틀릴 수 있다는 한계를 알고 참고만 하지 맹신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 올해 종합주가지수를 어떻게 전망했나?
“3월부터 약세장으로 판단했고 9, 10월 즈음에 1300~1400 정도가 바닥일 거라 생각했는데 1000이 깨질 줄은 몰랐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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