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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입국, 입자가속기 건설이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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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OECD 30개국 가운데 12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얼핏 듣기에는 상당한 수준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수준은 3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한다. 특히 국제협력과 기업 간 협력 등 네트워크 부문과 지식재산권 보호 부문은 22위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분야의 현황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뒤처져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무려 3명이나 배출됐다. 이들은 일본 물리학회의 적극적인 건의와 일본 정부의 야심찬 사업 지원으로 벨레(Belle)라고 부르는 입자가속기를 만들어 세계 물리학사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다른 쪽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보다도 국민소득이 훨씬 떨어지는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도 이미 30여 년 전에 입자가속기를 건설해 보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두 나라 역시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핵 및 입자물리 연구를 통해 벌써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들 나라는 비록 경제력은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기초과학연구 수준만큼은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최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입자가속기는 거대 과학시설로 마치 미국의 항공우주국에서 우주 탐사를 위해 우주선을 설계해 제작·발사한 후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즉 건설 단계에서는 가속관을 설치할 지하 터널을 구축하는 토목공사로부터 시작해 중공업 회사들이 제작하는 각종 가속기 부품 제작은 물론 이에 수반되는 전기전자장치, 진공장치, 초전도 자석, 컴퓨터 제어장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21세기 초 첨단기술을 집대성한 종합과학기술의 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기초과학 및 응용과학 연구를 위한 시설이지만 기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초기단계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가속기의 경우 기본 인프라 구축은 물론 건설 후 실험단계에서도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긴밀한 협력연구가 보편화돼 있다. 따라서 가속기와 같은 사업을 추진해 성공시킨다면 과학기술 역량 평가에서 OECD에 비해 우리나라가 부족하다고 지적된 국제협력, 기업 간 협력 등 네트워크 부문과 지식재산권 보호 부문도 자연스레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강력한 추진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제가 어렵지만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내다보고 중이온가속기와 같은 거대 과학시설 건설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미래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명실공히 자랑스러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길이다.

심광숙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