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거품엔 손 안 댄다? 중앙은행 생각 바뀌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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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29면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 자산 거품이 생기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자산 거품에 신경 써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이 이러한 삼단논법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중앙은행가들이 이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산 거품이 소비자 물가를 해치거나 최대고용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라면 이를 소탕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물가와 고용이 괜찮다면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 그들의 정책 독트린은 ‘자유방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화이트에 따르면 이젠 이런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는 13년간 국제결제은행(BIS)에서 경제자문 및 통화경제국장으로 일하다 최근 은퇴했는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과거에 최악의 경제침체를 유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경기하강이 있기 전인)1873~74년과 1920년대의 미국, 1980년대의 일본, 1990년대의 동남아에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없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후 경제는 최악이었다. 미국 경제는 1873~1879년 65개월간 움츠러들었다.

‘자산 거품이 파열되면 인플레이션 못잖게 시장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면서 물가관리 목표에 매달렸던 중앙은행가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주택 거품 붕괴와 금융위기에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가들은 적어도 대중 앞에서는 여전히 자산 거품을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핵심을 벗어났다. 화이트는 말한다. “우리는 자산 가격을 관리하라고 제안하지 않았다. 자산 가격은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기저에 깔린 문제는 과도한 신용팽창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산 거품을 식별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부채담보부채권(CDO)이며 구조화투자회사(SIV) 같은 각론에 집중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총론을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신용의 문제다. 항상 새로운 첨단 금융상품이 쏟아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레버리지(차입투자)와 투기, 떨어지는 신용등급 등이 그렇다.

그동안 자산 가격에 손을 댈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일단 자산에 섣불리 손대지 말고 가만히 뒀다가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는 모델이 설득력을 얻었다. 현실에서 먹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는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고 맞선다. 경기침체가 더 길어지고 깊어져 치유하기 힘들면 중앙은행가들은 어떤 접근법이 나을지 고민할 것이다. 자산 가격에 손을 댄다면 유동성 확충과 주택담보비율 조정 같은 거시대책과 통화정책의 양대 해법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청소(clea-ning)보다 죄의 정화(cleansing)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실패하면 중앙은행가들은 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으며 결국 무력해질 것이다. 가장 좋은 처방약은 예방책을 만드는 일이다. 급격한 신용팽창과 모든 부문에 걸친 자산가격의 상승, 소비습관의 변화를 목격한다면 ‘상처가 곪고 있다’고 외치는 경고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중앙은행가들은 깨달아야 한다. 신용위기에서 행동으로 보여 주지 않으면 사회에 더욱 커다란 비용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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