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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성운동가 김상희 의원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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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10면

민주당 김상희(54) 의원은 여성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다. 197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여성·환경운동, 민주화와 정치개혁에 매진해 왔다.

“저의 꿈은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는 척박했던 한국 시민사회에 여성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김 의원은 약사다. 이화여대 제약학과 72학번으로 실제 약국도 운영했다. 그냥 약사 생활을 계속했다면 좀 더 순탄한 삶을 살아왔을 터다. 하지만 그가 여성운동에 뛰어든 건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그 내면엔 지금은 팔순이 되신 김 의원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김 의원이 어릴 적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고 가르쳤다. 김 의원도 위인전을 읽으며 슈바이처 같은 봉사자의 삶을 꿈꿨다.

“60년대만 해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남편에게 매맞고 사는 아내가 한둘이 아니었죠. 주변에서 그런 여성들을 보면서 ‘얼른 커서 저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또 틈날 때마다 “반드시 직업을 가져라”고 강조했다. 어머니는 김 의원을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가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집을 나가고 보니 가정부밖에 할 게 없었더란다. 이후 여성은 꼭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고, 어려운 가정살림에도 두 딸을 약사와 간호사로 키워 냈다.

김 의원은 대학 졸업 후 약사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여성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지금은 시민운동에 전념하는 상근자가 대부분이지만 당시만 해도 자기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동료들과 힘을 모아 83년엔 한국 최초의 진보여성운동 조직인 여성평우회를, 87년엔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창립했다.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가족법 전면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성폭력 방지 특별법 제정, 여성 공직 확대를 위한 할당제 도입 등 그가 이뤄낸 여성운동의 성과는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2006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난해 대통합민주신당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에게 ‘왜 정치판에 들어왔느냐’는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그는 “여성운동을 하다 보니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로 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며 “정치는 블랙홀이다, 희망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마냥 외면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일단 들어온 이상 적당히 하고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권이 깨끗해지고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시민사회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오도록 제대로 한번 해볼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의 한 지인은 “김 의원의 정치참여에 강하게 반대하며 논쟁도 많이 했지만 그의 신념과 순수함을 믿기에 끝까지 막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정치 위기의 시대에 그의 순수한 신념이 어떻게 현실을 뚫고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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