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론>산울림의 큰울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베테랑의 기백 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산울림의 이름으로는 지난 12집 이후 6년만에,오리지널 세 형제 편성으로는 지난 9집 이후 무려 13년만에 산울림이 열세번째 정규 앨범'무지개'를 안고 돌아왔다.그리고 올해는 글자 그대로'전설

'의 한 봉우리인 산울림이 결성된지 꼭 20주년이 되는 해다.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그동안 잃었다.산울림의 신작이 정작 경이로운 것은 이 중년(!)들의 컴백 앨범의 음악적 기치가 달콤하고 보편적인 6집 혹은 8집 앨범('창문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회상'같

은 주옥의 발라드가 수록된)의 정조를 따르지 않고 이들의 음악적 원체험의 공간인 초기 1~3집의 격렬한 에너지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산울림의 함장 김창완은 일렉트릭 기타의 인트로를 통해'오토바이'위에 올라'사이버'세계 특유의 의미 사슬을 열정적으로 교란하며,부함장 김창훈은 득의에 꽉찬 저력의 메탈 창법을 여전히 강력하게 구사하며'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로

앨범의 서장을 연다.막내 김창익의 드러밍 또한 오랜 직장생활 속에서도 스틱의 질주와 절제의 미학을 잊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개의 진짜 라이브 버전('내 마음은 황무지'와'가지마오')을 보너스로 수록한 이 앨범의 신곡 11개 트랙이 기타와 베이스,드럼을 제외한 어떤 세션의 틈입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산울림의 사운드 메커니즘에 불가결

한 것이었던 키보드를 배제한 사운드는 단순히 3명만으로 충분하다는 허식이 아닌,데뷔 이전 록의 원형질로의 복귀다.

나이가 들면 본능적으로 사운드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 싶어하거나 다른

전문인들의 역량을 빌려 안전운행의 유혹 속에 빠지기 쉽다.여전히

보수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미국 음악계의 최대 축제 그래미 시상식에서

영화'페노메넌'의 삽입곡'

체인지 더 월드(Change The World)'로 노른자위 세부분중 두개(올해의

노래,올해의 레코드)를 독식한 노장 에릭 클랩턴이 그러하다.90년대를

지배하는 정상의 팝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의 프로듀싱 아래 탄생한 이

노래는 그러

나 제목과는 달리 세상의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이'신의 손'은

다만 온건한 백인 중산층의 기호라는 보호막 아래 자신의 음악적 생존을

도모했을 뿐이다.

산울림의 컴백이 과연 거의 고사지경에 빠진 이 땅의 베테랑 문화를

곧추세우고 두세대 아래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은 로커 군단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것인지는'사랑과 평화'와 전인권이 중심이 된'들국화'의

복귀 실패 사례를 감안할

때 다소 불투명하다.그리고 천편일률의 댄스 리듬에 지친 10대 세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뻘인 이들 형제의 음악 시편들에 과연 귀를 기울일 것인지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없이 산울림은 이 잔인한 90년대 세대에 대해서도

노래하고 있다.'네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라고.하지만 역시 이 앨범은

이들의 음악과 함께 청춘의 비망록을 썼던 이 땅의 기진맥진한 20,30대의

손에 먼저 들려져야 한다.그래미 수상식이 부러웠던 점 단 하나는 어른 세대들의 완벽한 자기방어다.그러나 재킷은 조금 아쉽다. 〈 강 헌 대중음악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