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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산의 얼이 숨쉰다 - 靑田 이상범展 14일부터 호암갤러리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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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미의 전형’탐구에 일생을 바친 이가 있다.중국의 관념적인 산수화와는 다른 세계다.바로 근대 한국화단의 제1세대 작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한국적 산수화의 독자적 양식을 만들어낸 인물이다.청전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인 ‘한국산수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전’이 14일부터 4월20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청전 양식이 확립된 5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만 만나는게 아니다.공식적으로 화단에 데뷔한 21년 서화협회전 이전에 그린 1919년도 작품부터 연대기순으로 70여점의 대표작을 선보인다.이 가운데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유경(幽境)’ ‘설촌(雪村)’등 대표작과 ‘고성추색(古城秋色)’등 길이 3m가 넘는 대작 10여점,처음 공개되는 청전의 유일한 인물화인 ‘충무공 영정’이 포함돼 있다.

청전은 총독부 주최로 22년부터 43년까지 계속된 조선미술전람회(鮮展)를 무대로 성장한 대표적인 산수화가.선전 초기만 해도 그가 다녔던 국내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 스승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의 관념산수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산천의 경관을 직접 담은 청전만의 독자적인 실경산수를 모색했다.이런 역량으로 선전 연속 10회 특선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작가로서는 영광이었지만 바로 이점 때문에 광복 직후엔 친일작가로 낙인찍혀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에서 소외되는등 배척받기도 했다.

하지만 청전이 이같은 비난을 받기에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살사건’의 주인공이 당시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재직했던 청전이었다.청전의 그림값이 한국화가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가운데서도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지만 어쨌든 이 사건으로 청전은 옥고까지 치렀다. 청전은 이미 20년대부터 우리 현실 문제를 작품에 끌어들인 실경산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이러한 모색 끝에 50년대 후반을 거쳐 60년대 초반에 이르러 완숙한 청전양식을 완성해냈다.

청전 이전의 산수화는 중국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의 상투적인 표현만이 전부였다.하지만 청전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산과 황량한 벌판,귀가길의 촌부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담아냈다.이같은 향토적 소재를 잘게 끊어지는 경쾌한 필법과 변화가 적은 단순하고 담백한 화면으로 표현해낸 것이 바로 청전양식이다.

8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10주기 기념 특별전 이후 15년만에 마련되는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한국미의 전형이 그리운 이 시대 문화갈증을 풀어줄 좋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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