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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열아홉 이승렬, K-리그 신인왕에 당당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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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K-리그 신인왕이 된 이승렬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이맘때 프로축구 FC 서울에 입단한 신인들이 경기도 구리 훈련장 감독실에서 세뇰 귀네슈 감독과 처음 만났다. 한마디씩 해보라는 감독의 말에 이승렬(19)은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 감독께서도 저를 많이 도와주십시오.” 아직 고교(신갈고) 졸업식도 치르지 않은 애송이가 던진 뜻밖의 발언에 귀네슈 감독은 웃음을 터뜨리며 “너를 도와주는 게 바로 내가 할 일”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1년이 흐른 지금, 그 소년은 K-리그라는 정글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일생에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왕에 올랐다. 9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이승렬은 기자단 투표 93표 중 67표를 얻어 2위 서상민(경남·14표)을 여유 있게 제쳤다.

올해 이승렬은 31경기에 출전해 5골·1도움을 기록했다. 데얀·박주영·정조국·김은중·이상협 등 등 유능한 공격수가 넘치는 서울에서 고교를 갓 졸업한 신인이 이렇게 중용될 거라고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귀네슈는 지난해 기성용과 이청용을 꾸준히 기용하며 보석으로 다듬어낸 것처럼 올해는 이승렬에게 기회를 줬다. 입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 공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쓸 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승렬은 감독의 배려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7월에는 1-0 승리를 만든 결승골로 라이벌 수원 삼성의 18경기 무패 행진을 중단시켰다. 올해 터뜨린 5골 중 3골이 결승골이었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승렬은 “프로 무대는 고교 때 경험하지 못한 스피드와 파워가 있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했다. 대학에 갈 걸 괜히 프로에 왔나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지라는 감독님과 선배들의 격려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정규리그 막판 상대 수비수에게 차여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바람에 챔피언 결정전에 나서지 못한 게 이번 시즌 유일한 아쉬움이다.

당돌하기로 따지면 이천수(수원)를 뺨치는 이승렬의 내면은 나이에 비해 깊고 단단하다. 그는 “볼만 잘 차는 유명 축구선수가 아니라 팬과 구단을 생각할 줄 아는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렬에 따르면 “사생활 관리에 실패한 브라질의 뚱보 스트라이커 호나우두는 유명 선수이고, 프랑스 축구의 전성기를 연 지단은 훌륭한 선수”란다. 취미는 동영상 관람이다. ‘위닝 일레븐’ 등 축구 게임을 즐기는 또래와 달리 유명 스타들의 축구 동영상을 내려받아 본 뒤 훈련 때 따라 하는 노력파다. 이승렬은 “2년차 징크스에 걸리지 않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몸을 만들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운재 MVP, 기성용 베스트11 최다득표=철벽 방어로 수원 삼성의 ‘더블’(정규리그·컵대회 우승)을 이끈 이운재(35)가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프로축구 25년 사상 골키퍼가 MVP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93표 중 72표를 얻은 이운재는 가장 나이 많은 MVP가 되는 기록도 세웠다. 수원은 차범근 감독이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고, 이운재·마토·조원희·에두가 베스트 11에 뽑혔다. 정규리그 준우승팀 서울은 기성용·이청용·아디를 베스트 11에 올렸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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