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핵 인정’ 미 국방 보고서 속내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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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합동군사령부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명기한 연례보고서를 처음으로 발간, 파문이 일고 있다. 중국· 러시아·인도·파키스탄과 함께 북한을 아시아 핵 보유국 명단에 포함시킨 것이다. 정부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고, 미 측에서 수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히 넘길 수 없는 측면이 있어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정부 차원에서 용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도 핵실험을 한 북한의 ‘핵능력 강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 미국 정부도 2030년대에 핵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감안한 것이지, 북한에 핵 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이 그동안 북핵 저지를 위한 금지선(레드라인)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북핵 불용’을 역설하면서도, 다른 쪽에선 ‘북핵 한두 개는 용인할 수 있는 것 아니냐’로 해석될 만한 발언들이 빈번하게 튀어나왔다. 특히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수석대표는 “레드라인은 핵물질을 다른 국가나 단체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한 적도 있다. ‘북핵 불용’에서 ‘이전 불용’으로 간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겨온 것이다. 가뜩이나 의구심이 일고 있는 판에 미 군당국의 ‘북핵 용인 보고서’가 나왔으니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 북핵 불용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대북 정책을 정반대로 돌린 부시 정부의 행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실용에 입각해 거침없는 직접외교를 펼칠 때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는 미국 정부의 설명에만 안주하지 말고 그 속내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북핵 한 개가 미국엔 안보 위협이 아닐지 몰라도 한국엔 국가 존망이 걸린 사안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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