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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새삼 펴보는 대통령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해 들어 불신의 늪에 깊이 빠진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비감한 표정으로 국정운영에서 몇가지 잘못된 점을 시인하고 남은 임기중 해야 할 개혁과제를 또 제시했다.사과는 솔직했으나 개혁에 대한

약속은 4년전 취임사를 다시 반복한 인상을 준다.金대통령은 아마도“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도려낼 것은 도려내야만 한다”던 4년전 취임사의 한 대목을 연상하면서 과거 정권과의 단절에는 성공했어도 자신의 환부(患部)를 진작 도려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책임은 대통령 혼자몫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과는 수용되되 이번 연설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은 또 내세운 개혁의 과제가 4년내내 했던 것과 다르지 않고,더욱이 남은 임기 1년동안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 직무수행의 어려움에는 동감하고 싶다.대통령 한 개인의 개혁노력이 아무리 컸어도 주변 참모의 질과 수준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뜻은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래서 요즈음의 지도자론은 주변 인물을 포함한'리더십의 집합론'으로 평가받는 것이 상례다.어떤 경우든 金대통령은 리더로서 때론 외롭고,그 외로운 가운데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를 갖고 국정에 임해왔을 것이라는 점을 어림할 수 있다.

그러나 집합체 전체의 책임은 결국 대통령 혼자의 몫이다.역사의 평가는 늘 대통령 개인의 자질.능력과 업적에 모아져 왔기 때문이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늘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미국의 경우에는 신문이 매개해 주로 역사학자들이 하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권위를 갖는다.지난해 초 시카고 선 타임스가 한 평가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1천2백8점으로 최상의 평

가를,그리고 워런 하딩이 3백73점으로 최하의 평가를 받았다.지난해말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한 평가는 워싱턴.링컨,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위대한 지도자로,그리고 하딩.후버.닉슨 등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손꼽았다.

이들 평가는 정치적 리더십.외교정책.국내정책.성품.역사에 대한 영향

등을 지표삼아 한 것이고,현직 대통령에 관한 관심을 외면할 수 없어

클린턴 대통령을'파고드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숙련되고 발랄한

정치인'이라거나'자기 훈련이 부족한 지도자''국민에 대한 판단이 이랬다 저랬다 하고,기회포착에 강한 기회주의자'라는 서로 엇갈린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그러나 미국의 강점은

현직 대통령의 비리를 검찰과 법원에서 가려낸다는 점과 역사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을 정확히 밝혀낸다는 점이다.

역사에 바로 기록되길

어제의 연설을 계기로 金대통령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에 스스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그것은 개인의 간단없는 노력에도 달렸지만 남은

임기중 꼭 한가지만 한다면'한국 민주정치의 선구자요 개혁자'로서 역사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 기록될 것이다.그것은 연설의 내용과는 상반되는 것이긴 하지만 여당의

대선후보중 구습(舊習)에 젖어있는 후보는 도려내라는 주문이다.철저한

경선이 민주모습인 듯 보일 수는 있지만 저간의 한국정치사에 책임을 지고

있는 金대통령으로선

특정후보를 미는 데는 초연한 입장을 취하되 문제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데는 손에 물을 적셔야 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인사정책.선거법.정치자금법 등 수없는 법개혁을 했어도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역들이 구태의연하면 고쳐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역사의

진실을 이 시점에서 마음속 깊이 되새겨 역사에 바르게 남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金 光 雄〈서울대교수.정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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