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임원 되려면 악바리 근성 키워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여성 임원이 되려면 ‘악바리 근성’ 키우고 전문성으로 압도하라.”

정보기술(IT) 업계의 여성 간부들이 후배 여성들에게 자주 하는 충고다.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라” “남녀 구분 의식 말고 조직에 몰입하라”는 조언도 내놨다. 중앙일보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IT 업계 여성 간부들을 상대로 진행한 심층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에는 KT·SK텔레콤·LG CNS·NHN·한국MS 등 국내 대표 10여 개 IT기업 여성 간부 27명이 참여했다.

#“남녀 구분 말고 조직에 충성”

IT업계는 전통 업종보다 남녀 차별이 적어 여성 간부가 증가하는 추세다. 근무 부서도 전략·기획(8명), 마케팅(7명), 기술·개발(7명) 등으로 다양하다. ‘직장 내 남녀 차별’은 40~50대는 절반이 “경험해 봤다”고 했지만 30대는 9명 중 한 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막인 ‘유리천장(승진차별)’은 여전했다. 설문 참가자의 30%가 이 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전통적 고민인 ‘출산·육아 부담’(35%) 바로 다음이다.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0.4%에 불과했다. 상황이 좀 낫다는 IT업계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응답자들은 “근성과 인내를 가지고 전문성을 키우라”고 여성 후배들에게 충고했다. 이런 의식 때문인지 응답자 27명 중에는 박사가 1명, 석사가 16명에 달했다. 변호사·회계사·기술사 같은 전문 자격증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남녀 구분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는 충고도 많았다.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SK텔레콤의 박명순 미래사업개발 1팀장은 ‘애 키우는데 야근은 관두지요’ ‘장기 출장은 빼줄게요’ 같은 배려를 당연한 듯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IT 발달로 밤낮 없는 근무가 가능해진 만큼 밤샘 작업쯤은 끄떡없이 견뎌낼 만큼 강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삼성네트웍스의 정혜림 팀장은 “남성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자주 드러내는데 여성은 이를 쑥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했다.

#“일 잘하는 여성 많이 써야 발전”

응답자들은 섬세한 일 처리 솜씨와 유연한 사고를 지닌 여성을 많이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도 득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친화력’이 타 부서나 협력회사들과 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남성보다 여성의 업무 역량이 뛰어나다”고 답한 이도 적지 않았다. 우수 여성인재가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은 외국계 기업에 몰리는 것 같다고 응답자들은 판단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외국계 기업 여성 7명 모두 “근무 부서나 승진에서 차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MS의 김현정 부장은 “여성의 다양성과 유연함, 뒷거래 없는 투명성을 소홀히 하면 기업으로서 손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 Joins 직장인 섹션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