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새 영화 '첨밀밀' 개봉맞춰 내한한 리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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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신라호텔에서 만난 리밍(黎明.31)은 자줏빛이었다.실크 셔츠도,벨벳 바지도,새틴 재킷도.“자주색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었다.“그렇지 않아요.”평소엔 청바지등 캐주얼한 청색계열 옷을 즐겨 입지만“오늘은 사진촬영도 하고 방송

에도 출연하는 특별한 날”이라 정장풍으로 입었단다.그는 또 아침에 얼굴이 붓는 바람에 얼음찜질하느라 평소보다 분장에 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야외촬영에 응한 리밍의 말없는 포즈는 언뜻 왕자웨이(王家衛)감독의'타락천사'에 출연했던 고독한 킬러를 연상시켰다.하지만 막상 말을 시작하면 명랑하고,어떻게 보면 순진한 청년같기도 해 새 영화'첨밀밀'의 대륙 촌놈

소군과 닮아있다.94년'불초자 열혈남아',95년'타락천사'로 한국의 영화팬들을 만나기 시작한 리밍은 새 영화에선 이전의 고독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순진하고 촌티나는 중국 청년으로 또다른 이미지를 선사한다.

깔끔한 도시풍의 외모를 지녔지만 그는 의외로'첨밀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어서 큰 애정을 느꼈다고 말한다.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난 그는 네살때 부모와 함께 낯선 홍콩으로 이주해왔고 말이 통하지 않아 주눅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중국에서 1주일에 한번정도 고기를 배급받던 것과“대륙에서 매일 청색의 인민복 입은 사람들만 보다 홍콩에 내렸을 때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매우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그리

고 14세의 나이에 혼자 영국에 갔을 때도 언어로 고생했기 때문에 소군의 역할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그는“오히려 천커신(陳可辛)감독이 나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많이 참조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4살때 홍콩으로 이주

30이 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20대다운'장난기'가 남아있는 그는“지금은 세번째로 새로운 언어를 익히느라'고생'하고 있다”며 웃었다.바로 한국말이다(그는 한국말을 꽤 잘한다.사진촬영을 할 때도 그는 포즈를 취한 뒤“하자,Let's

go”“끝난 거야?”라고 말했고“괜찮아”“필요없어”등 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한다).

그는 한국말 익히기에 힘쓰는 이유를“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한국팬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설명한다.“한국팬들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다”며“이번에 이소라의'난 행복해'를 중국어로 번안해 새 앨범에 수록한 것도 이런 한국팬들을

위한 서비스였다”고 했다.의상이나 분장에 신경쓰고 늘 최상의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나가고자 하는 그의 태도에서 이미지 관리와 팬 관리에 정성을 기울이는 프로페셔널한 면을 본다.

이미지.팬관리에 철저

그는 베이징에서 건너온'촌놈'이 류더화(劉德華).장궈룽(張國榮).장쉐유(張學友)등과 함께 홍콩의 4대 천왕에 꼽히는 스타로 성장한 것에 대해“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80년대 중반 영국에서 돌아온 후 어느날 지하철역을 빠

져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연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붙잡은게 연예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계기다.그래서 TV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아버지가 연예인이 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지만 그는 20세가 되면서 아버지에게“한번만 기회를 달라.성공하면 성공하는 것이고,실패한다면 아버지 소원대로 사업가가 되겠다”고 담판지었다.연기로 출발했지만 노래로 성공하게 된 그는“당시

장쉐유는 새로 발표한 음반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고,류더화는 영화에 몰두하고 있었으며,장궈룽은 은퇴 비슷하게 활동이 뜸한 상태여서 남자가수가 공백상태였기 때문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홍콩에서 가수와 배우가 된 것을 행운이라고 설명한다.왜냐하면 홍콩에서 유명해지면 곧 세계 각국의 중국인 사회에서도 알려지게 될 정도로 중국문화 상품의 시장이 거대하기 때문이다.또 그는 홍콩스타들이 유난히 노래와 연기

모두에 능한 이유에 대해“홍콩의 스타시스템 자체가 스타를 키우고 훈련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가수를 하면 배우도 할 수 있다”는게 영화계의 지배적인 의견이고 방송국등에서 연기훈련을 시키고 스타성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키워준다는

것이다.

'첨밀밀'이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인만큼 사랑에 대해 묻자“사람들은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바뀔 수 있다”면서“진정한 사랑은 천칭처럼 두 사람이 평등해야 하지만 이는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고 말한다.그는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점에 대해“현실에서는 도저히 가슴이 아파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수 있지만 사업은 그렇지 않다.그래서 남자에게는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혼은 35세 이후에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일)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나기 때문에 아마 35세 이전엔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며 웃는다.

대부분의 홍콩 젊은이들이“어느 정도 일과 경제력에서 기반을 잡은 35세 이후에 결혼을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오는 7월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해서는“기본적으로 변할 게 없을 것이다.오히려 연예인으로서 활동범위와 시장이 넓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가 기대된다”고 한다.

'첨밀밀'의 홍보차 내한한 리밍은 가수가 본업이지만 앞으로도 1년에 한두편의 영화에 출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왕자웨이.천커신 두 대조적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왕자웨이감독은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려주지 않고 부분부분을 촬영하는데

비해 천커신감독은 모든게 개방적”이라고 설명한다.

'첨밀밀'에는 호주출신의 명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처음으로 출연하는데 늘 술병을 끼고 다니는 영화속 배역의 모습이“실제 그의 모습과 똑같다”고 귀띔해준다. 〈이남 기자〉

<사진설명>

내한한 홍콩의 가수겸 배우 리밍. 천커신감독의 새 영화 '첨밀밀'에서 촌스럽고 순진한 중국대륙청년의 모습을 선보인다.<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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