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미래 그리는 역할 맡을 듯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이달 중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복귀하는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4년 넘게 고초를 겪었던 손 전 회장은 지난 8월 특별사면된 바 있다.

손길승(67) 전 SK그룹 회장이 4년 만에 컴백한다. 손 전 회장은 조만간 있을 SK그룹 임원 인사에서 SK텔레콤 명예회장에 내정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불명예 퇴진한 지 4년 만에, 지난 8월 사면복권된 지 4개월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이다. 복수의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중순, 늦어도 월말 인사에서 손 전 회장이 공식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의 복귀를 강력하게 희망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권오용 SK 기업문화실장(부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손 전 회장을 명예회장이나 고문으로 위촉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각 계열사가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고 있는 만큼 ‘복귀’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권 실장은 “그동안 경영 자문 역할을 해 온 것을 시스템적으로 하도록 모양을 갖추는 정도로 봐 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SK그룹의 다른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손 전 회장은 SK텔레콤은 물론 그룹의 ‘미래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98년부터 2004년 초까지 최 회장과 오너-전문경영인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측면에서 그는 여느 기업의 명예회장과는 다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의 한 임원은 “손 전 회장의 경력이나 캐릭터를 볼 때 ‘명예회장’이라도 뒷전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불황으로 번지면서 기업 경영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SK텔레콤은 수 년째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손 전 회장의 위기관리 경험과 경륜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전 회장은 2003년 2월 전문경영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장에 오른 인물. 이번에 SK에 컴백하면 그는 역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으로는 아주 드물게 국내 굴지 대기업 ‘명예회장’ 타이틀을 맡게 된다. SK그룹 55년 역사에서 명예회장 취임은 그가 처음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74년 선경합섬 경영관리반장을 맡은 이래 SK그룹에서는 ‘붙박이 기획실장’으로 통했다. 유공(현 SK에너지)·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그의 손을 거쳐 성사됐다. 98년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뒤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엔 최태원 회장과 함께 오너-전문경영인 투톱 시스템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손 전 회장은 그러나 2003년 초 SK글로벌·SK해운 분식회계, 계열사 부당 지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휘말리면서 고초를 겪었다. 전경련은 물론 그룹 회장 자리도 내놓아야 했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 4월 말 상고를 포기한 그는 8·15 광복절 때 특별사면을 받았다.

특별사면 이후 손 전 회장은 차분히 보폭을 넓혀 왔다. 8월 말 있었던 고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추모식 당시 근황을 묻는 중앙SUNDAY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요즘 인문학과 역사 공부에 빠져 있다”고 대답했다. 경영 복귀 여부를 묻자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게 내 일이지”라면서 손사래를 쳤었다. 그동안 손 전 회장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의 한 빌라에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에선 그의 복귀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SK의 한 전직 임원은 “전문경영인의 경륜을 활용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면복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있지도 않은 자리를 만들어 복귀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오히려 그룹 경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한발 물러나 후배들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게 옳은 방향일 것”이라며 손 전 회장의 복귀를 경계했다.

이상재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J-HOT]

▶ "어수룩한 촌로 아닌 머리 회전 빠른 前 세무공무원"

▶ 김초롱? NO, 크리스티나 김! 씁쓸한 아메리칸 걸의 변심

▶ 한영실 숙대총장 "축구하고 군대가는 여대생 만들것"

▶ [칼럼] MB가 셀까, 망신당한 농협이 셀까

▶ "문리를 통하지 못했다" 공부못했던 연산군의 비극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