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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료업종은 환율, 유통업은 가계 빚 눈여겨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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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22면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산다. 그런데 11월 수출이 18% 넘게 줄었다. 두 자릿수 감소는 ‘닷컴 거품’이 꺼졌던 2002년 초 이후 처음이다. ‘수출이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며 팡파르를 울린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만큼 이번 위기의 골이 깊다는 소리다. 수출 전선에선 최후 보루로 믿었던 정보기술(IT)마저 흔들리고 있다. 안방 장사도 비슷하다. 체력이 튼튼해졌다는 은행들이 다시 휘청대고, 헐거워진 주머니에 소비자 지갑은 꽉 닫히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감산을 넘어 생산라인을 아예 멈추고 수백만원씩 깎아 주는 세일에 돌입한 것이나, 신용회복위원회에 하루 1000건이 넘는 상담자가 몰리는 풍경은 ‘살벌한 내수의 겨울’이 왔음을 고한다.

눈 크게 뜨는 기업,투자자 2009년 전략은

사정이 이러니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자영업자·투자자 가릴 것 없이 업종의 앞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총론은 비슷하다. 2009년에도 ‘먹구름’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침체 강도와 회복 전망은 모두 다르다. 생존법이며 대응전술도 달리 짤 수밖에 없다. 주요 업종별로 증권가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 소리를 듣는 고수들을 한 명씩 추려 불황의 현주소와 전망, 회복의 전제조건 등을 들어 봤다.

은행
상반기 먹구름, 하반기 구름이다. 지금 은행은 과잉 레버리지(차입투자)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초기 단계’다. 금융권의 총대출은 2000년대 초 국내총생산(GDP) 대비 90%에서 지금은 130%로 불어났다. 2006년까지는 소비자가 ‘집을 사는 데’ 돈을 빌려줬고, 2007년부터는 공급자가 ‘집을 짓는 데’ 돈을 빌려줬다. 환율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처럼 달러당 1500원(100엔당 1500원)을 넘나드는 고환율이 이어지면 통화옵션상품(KIKO) 등으로 막대한 파생상품을 취급해 온 은행도 험로를 피할 수 없다. 이런 환율은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최대 1%포인트까지 낮춘다.

무엇보다 실물 부문의 구조조정이 현실화하면 은행의 잠재부실이 수면 위로 노출된다. 수술 대상은 건설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신생 조선소, KIKO 중소기업, 개인사업자 등으로 넓다. 부실회사의 주인을 바꾸는 구조조정만이 은행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주식을 놓고 보면 보수적 시각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없인 자금시장 경색 완화도 없다. 한국투자증권 이준재 연구위원

건설
2008년 들어 건설업종 주가 하락률은 68%에 이른다. 미국발 경기침체 심화와 더불어 16만 가구 수준의 국내 미분양 아파트, 97조원의 PF 부실화 우려, 일부 중소 건설사의 도산 위기감이 문제다.다만 이런 모습이 천편일률적인 건 아니다. PF 대출 잔액의 만기 부담감이 크지 않고, 양호한 아파트 도급 사업 실적과 부실 가능성이 작은 우발채무를 가진 주요 대형 건설업체들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 전체로는 내년 상반기 내내 구름이 끼다가 하반기에 조금 개이는 모습이 예상된다. 연간 건설투자는 공공건설 확대 등으로 2.9% 증가할 전망이다.

관전 포인트는 ‘정부 움직임’이다. 돈을 풀고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면서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 흐름이 나와 줄지 봐야 한다. 내수 진작책이 펼쳐지면 GDP 성장 기여도가 높은 건설업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건설업의 70%를 점하는 주택 등 건축 부문은 정부 정책의 시차를 감안할 때 3분기 이후 정상화를 기대할 만하다. 현대증권 이창근 연구위원

반도체
7월 이후 D램 값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분기 성수기 기대감으로 재고 축적이 있었고 가격도 상승세였다. 하지만 이후 경기둔화로 ‘PC 수요’가 줄면서 반도체 값도 하락세로 반전했다. 현재 1기가비트(Gb) D램의 고정거래처 가격은 1.06달러로 제조업체의 ‘현금 원가’를 밑돈다. 다만 올 4분기를 저점으로 내년 1분기부터는 완만한 회복세가 예상된다. 수요는 줄겠지만, 공급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어서다.

구체적으로 2009년 출하량 증가율(Bit growth)은 전년의 66%에서 줄어든 47% 수준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 1분기에 감소폭이 심각할 전망이다. 업황이 개선되려면 공급량 둔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폭이라도 D램 수요가 늘어날지를 주시해야 한다. 업황이 반전된다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커지면서 원가 경쟁력이 강화된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영주 연구위원 

자동차
올해 핵심 인자는 상반기 ‘고유가’에서 리먼브러더스의 몰락 이후 ‘신용’으로 옮아간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신흥시장으로 금융위기가 이전되면서 실물 수요가 위축된 데다 할부금리 상승과 대출심사 강화로 이런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경기부양책을 고려해도 시차를 따질 때 내년 상반기까진 어려운 시절이 계속될 것이다. 두 자릿수의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드는 내년 2월까지가 최악이다.

업황이 나아지려면 금융시장부터 안도를 되찾아야 한다. 돈이 부족하고 안 돌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신용이 줄 뿐 아니라 판매자 입장에서도 재고를 보유할 여유가 줄기 때문이다. 금융 쪽의 공포감이 사라지고 하반기부터 부양책으로 판매 감소폭이 차츰 줄면 조금씩 수요가 회복하리란 기대를 할 수 있다. 현대증권 조수홍 연구위원
 
음식료
생필품인데도 11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국제 곡물값은 고점보다 50% 떨어졌지만 환율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경기침체 때문에 소비도 의미 있는 감소를 보인다. 이를 상쇄할 수단인 가격 인상은 정부의 강력한 물가 안정책과 식품 이물질 파동으로 차단됐다. 부진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듯하다.

다만 중요 변수인 원재료 값이 내년 하반기엔 급반전할 전망이다. 현재의 곡물 값 하락 속도를 감안하면 2009년 하반기 환율이 평균 1300원을 유지해도 원재료 값은 떨어질 것 같다. 내년 여름 이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하반기와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소리다. 다만 내년에도 1450원대의 환율이 지속되면 음식료 업황은 살아남기 힘들다. 기업 이익과 주가 모두 그렇다. 환율이 최소 1300원 아래로 떨어지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음식료 업종을 짚는 나침반이다. 대우증권 백운목 수석위원

유통
소매경기 둔화 조짐이 강해진다. 소비심리는 올해 3분기에 고점을 찍은 뒤 조정에 들어갔다. 2009년 상반기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세와 3월부터 20만 명을 밑도는 부진한 고용으로 새로운 구매계층 유입이 주춤거리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부담이 중요한 악재다. 과거 빚은 ‘소비 평활화(일정한 소득수준 유지)’로 이어져 지출을 확대했다. 채무를 캐시(cash)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같은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주택담보대출 원금을 갚기 시작하면서 채무가 진짜 빚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행태도 바뀌어 하향 구매 현상이 강화되고 있으며, 수년간 지속된 소비 고급화도 내년에 조정을 맞아 내리막길이 불가피하다.
유통업 회복의 신호는 일자리 개선과 가계부채 상환에 대한 정책 성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키워드로 본 불황

3D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 디플레이션(Deflation)을 의미한다. 요즘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세 가지 요인이다. 최근 금융위기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빚을 제때 못 갚는 채무자가 늘고, 여력이 있는 사람도 소비나 투자보다 빚을 먼저 갚으려 하면서 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Bailout(구제)
사전적인 뜻은 ‘재정적 고통으로부터의 구제(a rescue from financial distress)’다. 금융회사 등에 정부나 중앙은행, 이웃 금융회사들이 단기 자금을 빌려줘 일시적인 자금난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9월 이후 미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1조 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세계적 사전 출판사인 미 메리엄 웹스터는 자사 온라인 사전을 기준으로 미국인이 2008년 가장 많이 검색했다는 점을 들어 ‘올해의 영어 단어’로 선정했다. 

미네르바 신드롬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환율 급등, 주가 폭락 등을 예측해 스타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그의 절필을 압박했다는 설과 맞물려 그의 경제 예측이 장안의 화제다. 그 배경에는 제도권 경제 전문가와 정부의 대응 등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똬리를 틀고 있다.

프리 워크아웃(Pre Work-Out)
이미 부실화된 기업에만 적용하던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일시적 자금난으로 흑자부도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기업 등에 적용하는 선제적 처방이다. 어떤 기업이 프리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 금융회사는 만기 연장, 금리 인하, 긴급 자금지원 등을 실시한다.

3월 위기설
일본 시중은행들이 올해 영업을 결산하는 내년 3월 한국에 대출해준 돈을 한꺼번에 회수하면 국내 환율시장이 다시 요동하면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 '시골의사 부자 경제학'을 쓴 박경철씨 등이 제기해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그 가능성을 일축하며 긴급히 진화에 나서고 있다.

대주단(貸主團) 협약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우량 건설회사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만든 지원 프로그램. 건설업체에 돈을 빌려준 은행·저축은행 등이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건설회사가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면 선별 과정을 거쳐 만기 연장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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