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제1호 현대 외교관 구웨이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36년 중국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된 구웨이쥔이 서양식 궁정 예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국서를 제출하기 위해 궁정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은 외교에 강하다.
1955년 중국인의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제네바회의와 반둥회의에 말쑥한 국제신사의 모습으로 참석했다.

그는 ①영토와 주권의 존중, ②비(非)침략, ③내정불간섭, ④평등·호혜, ⑤평화공존을 외치며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이른바 평화공존 5원칙이다. 이로부터 중국은 제3세계의 맹주가 됐다.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이때 덩샤오핑은 이른바 외교의 28자(字) 방침을 내놨다. 즉 “냉정히 관찰하고, 현실 기반을 튼튼히 하며, 침착하게 대처하고, 기회를 기다리면서 수세에 힘쓰고, 앞장서는 일을 피하면서 때가 되면 움직인다”(冷靜觀察, 穩住陣脚, 穩着應付, 韜光養晦, 善于守拙, 決不當頭, 有所作爲)는 외교 대전략이다.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는 바로 이 덩샤오핑의 외교전략의 과실이다. 외교적 수사(레토릭)에 있어서 현란함과 실속까지 거두는 양수겸장이 중국 외교의 특징이다.

시계바늘을 앞으로 돌려보자. 청의 멸망을 끝으로 중화제국의 천하질서는 깨졌다. 중국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외교에 하나의 나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온전한 나라대우도 못받는 반식민지의 모습으로. 당시 열강은 중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지금도 국내정치가 불안한 동남아 국가들의 외교 수장은 국가 수반보다 장기 집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가의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민국시기를 관통하며 중국을 대표해 국제 외교무대를 누렸던 중국 최초의 근대 외교관이 한 명 있었다. 당시 서방 외교계에 웰링턴 쿠(Wellington Koo)로 더 유명했던 구웨이쥔(顧維鈞ㆍ1888~1985)이다.

1912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약관 24살에 불과했다. 24살의 그는 북경정부 국무비서겸 외교부 비서로 파란만장한 외교 생활을 시작했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구웨이쥔은 중국 산둥반도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열강을 상대로 고구분투했다. 1898년 중국이 독일에 99년 점유권을 허락한 산둥반도를 1차대전에 패망한 독일로부터 당연히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구웨이쥔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미국 윌슨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승전국 중 하나였던 일본은 국제연맹을 만든 윌슨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인종의 평등’과 ‘산둥반도’. 윌슨은 일본을 서방열강과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인종의 평등'을 인정할 수 없었다. 윌슨은 산둥반도의 중국반환을 거부했다. 일본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구웨이쥔은 파리강화회의 외교전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대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32년9월 구웨이쥔은 국제연맹 중국대표 겸 주프랑스공사로 부임한다. 당시 프랑스는 중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사관만 둔 상태였다. 1935년 5월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외교부는 중국과 처음으로 대등한 대사급 외교관계를 처음으로 맺었다.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정식 국가로 처음 대접받게 된 것이다. 1936년 구웨이쥔은 주 프랑스 대사에 임명된다.

1936년10월 구웨이쥔은 국제연맹 회의에 중국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그 회의에서 그는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해 국민정부를 대신하여 일본과 담판을 진행했다. 더불어 중국의 항일 정신을 국제 외교계에 널리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41년6월 프랑스까지 독일에 점령당한다. 구웨이쥔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대사로 자리를 옮긴다. 위안스카이 집정기부터 1950년대까지 구웨이쥔은 중국 정치 외교계의 요직을 맡아 중국 및 국제외교 무대에서 55년동안 활약했다.

그는 국가이익과 민족존엄을 목표로 중국의 주권과 영토 수호, 침략전쟁 반대, 평화 자주외교 견지, 애국정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중국 외교가 강한 이유는 전세계를 상대로 활약했던 제1세대 외교관 구웨이쥔의 DNA를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 xiao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