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I 10년 만에 첫 감소 … “감세·재정확대·금리인하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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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고, 물가를 감안한 실제 소득은 감소했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다. GNI가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실질 GNI는 국민이 거둔 소득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GNI가 줄었다는 것은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은 교역조건 악화에 있다. 3분기까지 영향을 미친 고유가로 수입단가가 올라가면서 같은 물량을 수출한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크게 줄었다. 교역조건이 그대로였다면 입지 않아도 될 실질 무역손실은 33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것이 고스란히 소득 감소로 연결된 것이다. 다행히 4분기에는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사정이 다소 나아질 여지가 있다.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다. 성장률은 1분기 5.8%, 2분기 4.8%에서 분기마다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다. 정영택 한은 국민소득팀장은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가라앉고 있어 4분기에는 3%대 성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4.6%도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 팀장은 “내수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줄고, 가계 빚은 느는데 소득이 감소하니 소비가 늘기 어렵다. 3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업들도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설비·건설·무형 고정자산 투자는 전분기보다 0.7% 늘었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도 11월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빠르고, 과감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비상 시기인 만큼 감세, 재정 지출, 금리 인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가 나빠지면 상대적으로 타격이 큰 서민층과 중산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타기팅’, 머뭇거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신속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가계의 처분 가능한 소득이 너무 부족하다”며 “각종 준조세와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재정 지출을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과 금융 부문의 부실을 털어내는 과감한 구조조정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지금은 물가를 걱정하며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이 급속히 둔화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은 대외 여건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경기부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대외 신인도 제고나 수출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때는 정치권의 협력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본부장은 “내년 이후 경제의 모습은 경기 악화 속도에 맞춰 얼마나 빨리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경기가 예상을 넘어 급속히 식고 있는데 그나마 내놓은 대책도 국회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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