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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轉의시대>6.낡은 것이 좋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달고나'와.라면땅'에서 시작된 복고와 향수바람이 TV속의.추억의 책가방'에 실려와 해 저문.소양강 처녀'의 가슴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길거리에는 손뜨개 니트에 맘보바지.나팔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넘실거린다.EnC를 비롯한 각 패션메이커가 지난날 중학교교복과 비슷한 손뜨개 옷을 기계니트보다 비싼 값에 잇따라 내놓고 있다.80년대초 교복 자율화를 맞았던 서울시 내 중.고생들의 교복착용률은 이제 90%에 달한다. 최근 복고 경향중 단연 돋보이는 소재는 재봉틀..꽃님이 시집갈 때 브라더미싱'이란 광고문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재봉틀은 60년대 혼수품 1호였다.한때 연 판매대수 20만대에 이르던 재봉틀은 80년대 들어 연 판매량이 고작 2만~3만대를기록하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하지만 재봉틀은 최근의 퀼트붐을 타고 급상승,지난해는 급기야 판매량 10만대를 넘기며 화려하게재기했다. 복고 바람은 동네골목이나 아파트단지 곳곳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도 불고 있다.노트겉장으로 만든 딱지로 딱지치기를 하거나 삼삼오오 연탄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 2백원씩하는 달고나(일명 뽑기)를 먹기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7 0년대의 풍속도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도 복고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서울종로구삼청동의 카페.에꼴'은 70년대 어두운 찻집분위기에 테이블마다 옛 추억이 물씬하는 70년대 국민학교 국어교과서가 한권씩 올려져 있다.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김용관( 32.서울성북구정릉동)씨는“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 옛날 기억을 살려보고 싶어 꼭 이곳으로 데려와 맥주나 차를 마신다”며“철이와 영이가 나오는 국어책를 보면서.뽀빠이'를 안주삼아 먹다보면 잊고 살았던 어릴적 기억이 되살 아나 포근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TV광고에도.형님먼저 아우먼저'라는 라면광고와.뜨거워서 호호맛이 좋아 호호'란 호빵광고가 다시 등장하고 있으며 여성용 화장품에도 가루분이 다시 인기를 모으며 과거가 담긴 현재를 연출하는데 한몫 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성기(金聖基)씨는“복고라는 현상은 사회의 발전과물질적 풍요를 바탕에 깔고 현재 생활에 대한 회의와 권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향수가 담긴 낡은 것을 새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라며“복고현상이 자칫 전망의 부재와 현실감 을 놓칠 우려를 안고 있지만 대중의 위안기능 또한 크다”고 진단한다. 대중문화를 둘러싼 복고바람은 더욱 거세다.지난해 여름 7년만에 다시 부활된 TV드라마.전설의 고향'은 촌스러우면서 뻔한 귀신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도 했고 20년간 장수하다 89년 폐지된.수사반장'도.두형사'란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가 하면 30년전 추억의 팝송인.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홍콩영화.중경삼림'에 삽입되면서 활동 중단상태에 있던 그룹.마마스 앤드 파파스'가 내한공연까지 갖게 됐으며 드라마.애인'에 실렸던 67년곡.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 으세요'가 때아닌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가요중에서도 70년산.소양강 처녀'.낭랑18세'등의 흘러간 옛 노래가 한서경.김태희등 신인가수들에 의해 리바이벌돼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신세대 인기가수 터보도.검은 고양이 네로'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가 하면.신라의 달밤' 이 아카펠라로 선보일 정도다.연극에서도 악극.굳세어라 금순아'.번지없는 주막'에 이어 올해에는.울고넘는 박달재'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려지고 85년 개봉돼 70만 관객을 동원한.겨울나그네'도 곧 뮤지컬로 각색,무대에 올려져 3 0,40대 관객들의 가슴을 향수로 적실 예정이다. MBC 주철환(朱哲煥)PD는 “대중문화의 복고바람은 봄.여름이 있듯 주기를 갖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의 복고바람은 대중문화각 장르에 걸쳐 두드러지며 실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특징”이라며“현재의 사회와 정치상황에 대한 염증 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으며 가요의 경우에는 댄스와 랩음악에 대한 반동으로 흘러간 노래가 다시 예전 인기를 구가하게된 것”으로 분석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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