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입 3불 폐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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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부터 대입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어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실시를 대학 자율에 맡겨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들이 3불(不)정책에 반기를 들고 본격적인 폐지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학생 선발권은 대학 자율성 척도의 핵심 중 하나다. 학생을 가르칠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원하는 방식으로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의 효율성과 경쟁력이 확보된다. 국내 대학은 그간 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에 의해 자율성이 원천 봉쇄돼 왔다.

학교 간 학력·특성의 차이가 엄연한 데도 모든 고교의 학생을 동일 잣대로 평가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뿐이다. 게다가 2010학년도부터 고교선택제 도입으로 고교 간 특성화 경쟁이 본격화할 태세다. 이런데도 고교등급제 금지를 고집하는 건 비교육적 처사다. 본고사 금지 방침도 선발 자율권 보장 차원에서 푸는 게 맞다. 그렇다고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를 부활시킬 무모한 대학은 없다고 본다. 대학별로 시험의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질 뿐이다.

대교협은 기여입학제에 대해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 정서를 의식해서다. 그러나 기여입학제 허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마냥 미뤄선 안 된다. 최소 학력기준 충족과 정원 외 선발 등 기여입학 요건을 엄격히 하고 투명한 관리·운영을 위한 위원회 설치 같은 시스템이 전제된다면 무조건 반대할 일이 아니다. 기여금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고 교육용 시설을 확충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3불 폐지엔 대학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입시의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다. 수시모집에서 전형요강과 다르게 점수를 계산해 학생을 선발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고려대나 미대 교수의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진 홍익대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대학이 공정하고 투명한 전형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학생의 신뢰를 얻는다. 대학에 대한 신뢰 없는 자율화는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