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외국인‘사자’… 이번엔 오래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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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다시 사기 시작했다. 지난달 마지막 3일 동안 거래소 시장에서 589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일주일 단위로 따져도 판 액수보다 산 금액이 4500억원 가까이 많았다. 외국인의 주간 단위 순매수는 15주 만에 처음이다. 1일에도 규모가 줄긴 했지만 323억원어치(정규장 기준)를 사들였다. 올 들어 코스피 지수를 끌어내리는 데 앞장선 건 외국인이었다. 34조원어치를 팔았다. 국내 증시에 숨통이 트이자면 이들이 ‘묻지마 팔자’를 멈추고 매수로 돌아서야 한다는 얘기다.

◆줄어든 환율 걱정=달러를 들고 와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가장 큰 불안 요소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주식을 사서 시세차익을 남겨봐야 환차손으로 까먹는 돈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환율을 감안한 국내 증시 하락률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63%에 달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달 경상수지가 49억 달러 흑자로 돌아선 데다 한·중·일 통화 스와프 확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환율 급등에 대한 우려는 다소 줄었다. SK증권 김준기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투자자가 최소한 큰 폭의 환차손은 보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매도를 주도한 주요 헤지펀드의 올해 마지막 환매 신청이 지난달로 끝났다는 것도 호재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환매 신청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 주식을 내다 팔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말 배당철을 앞두고 외국인이 공매도한 주식을 되사 갚고 있다. 동부증권 송경근 연구원은 “공매도를 한 회사가 배당을 하면 공매도한 쪽이 배당금 액수만큼 주식 원소유자에게 물어줘야 한다”며 “연말에 공매도 상환이 많은 이유”라고 말했다.


◆본격 귀환 전망 일러=호재가 많아진 건 분명하지만 외국인의 한국 증시 ‘컴백’을 말하긴 아직 이르다는 견해가 더 많다. 우선 월말에 종종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교보증권이 올 들어 외국인의 순매수액을 따져봤더니 8월을 제외하면 한 달 평균보다 마지막 3일 평균이 월등히 많았다. 변준호 연구원은 “월말·월초에 자산을 재배분하는 외국인 기관투자가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 급등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견해도 있다. 하나대투증권 김영익 부사장은 “최근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국적에 관계없이 주식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줄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매수가 계속되기 어렵다는 또 다른 근거는 한국 주식이 그리 싸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계 자금이 주로 투자 기준으로 삼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코리아’ 지수의 향후 1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로 신흥국 평균(7배)에 비해 비싼 편이다. 세계 증시가 함께 곤두박질하면서 글로벌 평균(8.8배)과의 차이도 되레 좁혀졌다. 우리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외국인의 한국 주식 무차별 매도는 줄겠지만 당분간 본격적인 순매수로 돌아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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