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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과 AM39 엑조세 공대함미사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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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39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

함재기와 항공모함, 대함미사일과 이지스함의 등장 그리고 원자력 추진기관의 실용화와 핵잠수함의 건조는 흔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해전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꾼 3대 사건으로 불린다. 특히 대함미사일의 등장은 현대 해전의 양상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해군력의 균형을 무너트린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며 이지스함의 등장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함미사일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2가지를 손꼽는데 그 첫 번째가 이집트 해군이 구소련제 SS-N-2 스틱스(Styx) 대함미사일로 이스라엘 해군의 3000t급 구축함을 격침시킨 '스틱스 쇼크'고 두 번째가 바로 포클랜드 전쟁 당시의 '엑조세 스톰'이다. 엑조세 스톰이란 포클랜드 분쟁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의 대함미사일 공격에 당시 영국해군이 자랑하던 5000t급 최신예 방공 구축함이 격침된 사건을 말한다.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의 강경한 대응으로 전쟁이 가열되던 1982년 5월 4일, 포클랜드 제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전 세계 군사 관계자 특히 해군 관계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영국해군이 심혈을 기울여 건조함 쉐필드는 어떠한 적의 공격도 격퇴할 수 있는 무적의 전투함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공대함 미사일에 공격당했다는 뉴스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은 특종에 목말라하던 언론에 의해 경쟁적으로 보도되면서 곧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는 5대의 슈퍼 에탕다르 공격기와 5발의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충분한 전력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마땅한 전략무기가 없었던 아르헨티나의 입장에서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의 사용을 결정했다. 공격명령을 받고 출격한 슈퍼 에탕다르 공격기 2대는 영국함대의 방공망을 교묘히 뚫고 함대의 39km 앞까지 근접한 다음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영국함대의 방공 레이더는 이를 감지하지 못했으며 감시병이 이 공격을 확인했을 때는 엑조세 미사일이 함대에 4km까지 근접한 뒤였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슈퍼 에탕다르 공격기가 발사한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은 해수면 2∼3m 위를 초저공으로 비행, 정확히 쉐필드의 선체 중앙을 꿰뚫었다. 그리고 이 일격은 길이 125m, 폭 14.3m에 최고 3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최신예 방공 구축함이었던 쉐필드의 숨통을 끊기에 충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탄두가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충돌 당시의 충격과 로켓추진 연료의 화염으로 쉐필드의 발전시설과 소방시설이 먼저 파괴됐다. 특히 알루미늄 선체에 불이 붙자 화염은 걷잡을 수없이 번져 나갔고 만재배수량 4,820t을 자랑하던 최신예 쉐필드호는 4시간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5월 25일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도 엑조세 대함미사일 공격을 받아 5일 만에 침몰했고 글래모건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AM39는 공대함 발사형으로,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엑조세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미사일이다. 1979년부터 배치된 공대함 엑조세는 원래 AM38 이라는 이름으로 대잠헬기 탑재용으로 개발됐지만 이후 성능이 개량되고 전투기 등 고정익 항공기에서도 운용이 가능해 짐에 따라 AM39라는 새로운 제식명칭을 받았다.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현재 AM39 Block 2가 운용되고 있으며 최대 70㎞의 사정거리를 자랑한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간 계속되던 대함미사일의 효용가치에 대한 논란에 쇄기를 박았다. 중동에서 벌어진 실전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함미사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대형 전투함 건조를 추진하던 세계 각국은 해군력 증강 계획을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했다. 세계 각국의 해군은 다종다양한 대함미사일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게 된다. 반면 말 그대로 전 세계 언론에 의해 그 성능을 검증받은 엑조세는 국제무기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엑조세 미사일을 아르헨티나에 제공했던 프랑스는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 이전 스틱스 대함미사일에 대한 정보 분석과 엑조세 대함미사일의 도입을 통한 대함미사일 대비 및 공격태세를 완료했다는 사실이다. 스틱스 대함미사일의 경우 1970년 12월 인도네시아를 통해 관련 정보를 확보했고 엑조세 미사일에 대한 도입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져 1975년 전력화에 성공했다.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형이라 할 수 있는 미국제 하푼 대함미사일의 도입도 이루어졌다. 한편 구체적인 정보 수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72년 이스라엘을 극비리에 방문한 우리나라 방위산업 시찰단이 이스라엘의 가브리엘 대함미사일을 직접 견학한 일화도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독자적인 대함미사일 대응책을 보유하고 강력한 대함미사일 전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주국방에 대한 강렬한 염원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계동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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