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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YTN, 어디로 가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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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약간 과장을 하자면 나는 케이블 뉴스방송인 YTN을 거의 날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본다. 사실은 얼핏 얼핏 ‘뉴스 중독’ 증상도 나타난다. 뉴스를 안 보면 불안한 것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YTN에는 프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돌발 영상’이 재미있다. 특정 인물과 상황의 희극적이고 부조리한 측면을 부각시킨 장면을 보다 보면 ‘피식’하고 절로 웃게 된다. 때로는 영상이 너무 말초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교묘하게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편파성도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유쾌하게 본다. 억강부약(抑强扶弱), 혹은 권력에 대한 견제는 언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일 테니까.

그뿐 아니다. YTN에는 오랜 시절 가깝게 지내온 선후배도 적지 않다. 쉽게 말해 나는 YTN에 대해 동종 업체 종사자끼리의 유대감뿐 아니라 뉴스 중독 시청자로서의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벌써 넉 달 이상 계속되는 YTN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젠 정말 한마디 해야겠다고 용기를 낸 건 그런 배경에서다.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다. 일면식도 없는 구본홍 사장을 변호하고픈 생각이 내겐 전혀 없다는 걸. 솔직히 말해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보를 했던 구씨가 YTN 사장으로 온 게 적절치 않다고 본다. 거기까지는 나도 YTN 노조원들과 생각이 같은 것이다. 하지만 1995년 YTN이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걸어온 길을 옆에서 지켜봤던 입장에선 “낙하산 구 사장은 당장 물러가라”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억지 같다. 왜냐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준공기업적 성격이 있는 YTN에서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좀 더 쓴소리를 하자면 YTN의 역대 사장들은 예외없이 정권과 이러저러한 인연이 있었다. 김영삼 정권 때의 J씨나 김대중 정권 때의 또 다른 J씨나 모두 대통령 혹은 대통령 가족과의 친분관계 때문에 YTN 사장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뿐인가. 권력의 파워게임에 따라서도 YTN 사장의 운명은 왔다갔다 했다. 김대중 정권 때 J씨가 P씨로 바뀐 것 같은 경우다. 정권이 바뀌면 물으나마나 YTN의 사장은 교체돼 왔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P씨는 임기 도중 하차했고 그 자리에는 새 정권 실력자들과 함께 감방 생활을 했다는 또 다른 P씨가 임명됐다. 따라서 구본홍씨가 낙하산이어서 절대 안 된다는 논리는 좀 이상하다. 한번 물어보자. 왜 과거에는 그 많은 낙하산 인사를 다 받아들였는가.

둘째, YTN이 준공기업이 된 건 YTN 기자들이 원해서였다. YTN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YTN 기자들은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기자들은 자기 출입처였던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YTN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공기업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KDN이 YTN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KT&G가 2대 주주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YTN은 그런 과정을 통해 회생했다. 1997년 금융위기 때 다른 언론사에선 많은 기자들이 해고됐다. 하지만 준공기업인 YTN에서 해직 사태가 있었단 말은 못 들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준공기업의 특혜는 특혜대로 누리고, 간섭은 받기 싫다는 것인가.

셋째,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게 또 있다. 올 4월 YTN 사장 응모에는 총 7명이 지원했다. 그걸 사장추천위원회가 4명으로 추렸고, 거기서 최고점을 받은 구본홍씨를 이사회에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사장추천위원회에는 노조위원장도 참석해 모든 서류에 서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걸 무슨 명분으로 다시 뒤집을 수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당시엔 촛불시위가 격렬하던 때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이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이참에 정권을 밀어붙이자는 주장이 대세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YTN 보도국에선 선후배 간에 얼굴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고 한다. ‘선배들과 밥먹지 말 것, 전화하지 말 것, 인사하지 말 것’이라는 방이 나붙기도 하고 선배에게 “당신, 이명박 정권에 부역하는 거야”라고 삿대질하는 후배들도 있다고 한다. 아마 나 역시 신문사 밥을 오래 먹고 고참 기자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소릴 들으면 가슴이 콱 막힌다. 지금은 일제시대나 군사정권 시절이 아니잖은가.

YTN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방송사에 비해선 정치 바람을 덜 탄다는 평가도 들었다. 사장들은 낙하산이었지만 보도는 중립을 지키려는 고민의 흔적이 있었다. 가장 비정치적이던 방송사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왜 가장 투쟁적이고 정치적인 방송사처럼 돼버렸을까. 나는 그 배경을 모르겠다.

김종혁 문화 부문